매일신문

[야고부] 대국민 구걸(求乞)

14일 오후 검찰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증거 조작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국가정보원 대공수사처장(3급) 등 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어 처장의 윗선인 서천호 국정원 2차장의 사의 표명과 청와대의 즉각 수리 보도가 있었다.

15일 오전 10시 남재준 국정원장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같은 시간, 국무회의를 주재한 박근혜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 사실상 대국민 사과를 했다. '증거 조작'이라는 한 사건으로 관통돼 있지만 다른 장소에서 벌어진 4가지 사건이 단 20시간 만에 끝났다. 그토록 많은 의혹과 긴 수사에 대한 짧은 결말이었다.

이 20시간 동안 벌어진 일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한 치의 의심 없는 사건의 종결이 아니라 청와대와 국정원, 검찰의 강렬한 대국민 구걸(求乞)이다. 이 정도 선에서 제발 그만 잊어주십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론반응은 차갑고, 사안의 후폭풍은 남 원장이 물러나도 수습될까 말까다. 외교부까지 합세해 중국과 외교마찰 위험성까지 무시하고 조직적으로 조작한 것을 국정원장이 전혀 몰랐다고 발표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조직적 조작'에 가깝다.

국정원은 이번 사건으로 블랙요원의 신상이 드러나는 등 부작용이 일어났고 국민 신뢰도는 바닥이다. 이 때문에 국가 최고 정보기관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맞는 얘기다. 이와 함께 국정원장과 대통령은 뼈를 깎는 개혁으로 새로운 국정원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대통령이 아직도 묵묵부답인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보다 지키기가 더 어렵다. 국정원 보호는 정권이나 대통령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에게 충성할 때만 정당한 데 어떤 정권도 정보 독점과 향유를 포기한 적이 없어서다.

박 대통령이 여론과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사퇴압박을 받는 남 원장을 감싸는 속내는 알 수 없다. 오랜 측근인데다 국가정보총책을 맡길 만한 '믿을맨'이 없어서인지, 여러 헛발질에도 자고 나면 오르는 지지율 때문인지, 여론에 떠밀린 경질은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인 믿음과 대통령으로서의 믿음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철저한 원리원칙주의자라는 남 원장의 명예를 생각해서도 계속 그를 붙잡는 것은 옳지 않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읍참마속(泣斬馬謖)의 뜻까지 풀어 바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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