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갑오 동학혁명 20여년 전, 영해서 혁명 있었으니…

망국/조중의 지음/영림카디널 펴냄

1990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소설가 조중의(53) 씨가 동학혁명 120주년을 맞이해 해월 최시형(1827~1898)을 조명한 소설을 펴냈다.

장편소설 '망국'은 동학혁명사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1871년(고종8) 영해(경북 영덕군 영해) 동학혁명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당시 이 지역 동학교도 수백 명이 동학 창시자 수운 최제우의 기일인 3월10일 영해부 관아를 공격해 영해부사 이정을 죽였다. 이후 주모자들이 모두 처형되면서 끝났지만, 조선왕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지방관을 처형하고 전국 16개 지역의 동학교도들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1894년(갑오년) 동학농민혁명의 전조를 보여준 사건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해월 최시형이 1871년 영해성 동학혁명부터 1894년 갑오년 동학혁명이 일어나기까지 20여 년 동안 관군의 추적을 피해 숨어다니며 조직을 만들고 교세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을 역동적이고 섬세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최시형의 인간적인 면모에 주목한다. 동학을 믿기 시작한 지 2년 만에 수운 최제우에게서 도통을 물려받아 2대 교주가 됐지만, 영해혁명이 일어난 1871년 당시 최시형과 동학이 처한 상황은 위태로웠다.

조정은 동학을 서학(천주교)과 마찬가지로 반체제 집단으로 보고 최시형의 행방을 쫓았다. 그를 붙잡으면 1대 교조 수운 최제우와 마찬가지로 참형에 처할 작정이었다. 전국 유림에서는 유교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최시형을 없애려고 틈틈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동학 내부에서는 최제우가 참형을 당한 이후 교세가 흔들리자 교권을 차지하려는 세력들이 최시형을 압박했다.

해월이 아직 동학 2대 교주로서의 권위를 확고하게 차지하지 못하고 있을 1871년, 영해지역의 동학교도들이 영양 일월산에 숨어 살던 그를 찾아와 거사를 압박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하는 최시형에게 영해부 접주 박사헌은 이언이라는 교도를 보내 영해성을 치겠노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한다. 명분은 7년 전 처형당한 최제우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것이었다. 최시형은 실패할 경우 교단이 붕괴할 가능성을 우려해 신중한 태도를 취하지만 교단 내부의 압력에 밀려 거사를 재가한다. 무엇보다도 영해성 공격을 허락하지 않을 경우 겁쟁이 교주라는 비웃음당할 것이라는 것과 도인들로부터 외면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마음이 약해진다.

작가는 "갑오년 동학농민혁명의 대명사가 전봉준과 호남으로 획일화된 것은 상당히 아쉽다"면서 "해월 최시형은 기독교로 치면 바울과 같은 인물이다. 영해성 혁명이 실패한 후 20여 년 동안 경전을 만들어 배포하고 동학의 조직을 정비했다. 갑오년 호남에서 일어난 동학혁명은 해월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 모든 일을 20여 년 동안 관군의 추격을 피해 도망 다니면서 해냈다는 점이 놀라울 뿐이다. 해월이 아니었더라면 동학의 경전은 물론 육임제로 짜여진 접과 포의 조직도 불가능했을 것이다"고 말한다.

작가 조중의 씨는 "21세기 대한민국은 역사상 유례없는 강대국이 되었지만 일본과 중국, 러시아에 비하면 여전히 약소국이다. 오히려 남북으로 갈라진 분단국가에다가 열강의 이익에 따라 한반도의 정치지형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는 운명이 120년 전과 비슷해 두렵다"고 말한다. 그는 소설 '망국'이 21세기 대한민국에 반면교사가 되어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327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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