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이성과 감정

어릴 때부터 여러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주위에 친구들도 많은 편이다. 당연히 40여 년이 넘은 인연의 친구들도 제법 있다. 오래된 친구들은 상대의 감정에 대해서도 정확히 파악한다. 상대 친구가 어떤 상태인지를 말하지 않아도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오래된 친구들과는 이성적으로 판단하면서 어울리지 않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다고나 할까. 더 편한 친구로는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욕친구'도 있다. 예의를 지키기보다는 막 대하면서 친분을 과시한다. 하지만 편하게 지내던 친구와 딱 한순간의 말이나 행동 때문에 넘지 못할 길을 택하는 것을 다반사로 목격한다.

어쩌면 친구보다는 부부 사이에 있어서 이런 경우를 더 자주 목격하는지도 모르겠다. 좋을 때는 한 없이 좋아하다가도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드러내 실망하고, 분노하기도 한다. 이후 수순은 당연히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과거에 특별한 감정 없이 받아들이던 상대의 언행에 대해 신랄하게 비난하기 시작한다.

나부터 친구 사이에서는 물론 아내와도 이런 경험을 당연히 했다. 특히 젊은 시절 그 빈도는 훨씬 잦았다. 나이가 들면서 왜 그럴까를 생각하게 됐고 나름대로 해답도 찾으면서 이제 유사한 실수를 되풀이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 수십 년을 가까이 지낸 친구와 아내는 이성에 기대어 상대하기보다는 감정에 기대어 관계를 맺고 유지하기 때문이 아닐까. 친구가 아픔을 겪을 때 눈물을 글썽거리며 마음 아파해보지 않았는가? 아내와는 옛말처럼 '만리장성을 쌓은 사이'가 아닌가? 이런 순간의 언행은 냉정한 이성적 상태로 봤을 때는 유치하고, 겸연쩍은 것이 아닐까?

특히 '만리장성을 쌓은 사이'인 아내와는 사랑을 나눌 때는 '오글거리'는 언행도 서슴지 않으면서 감정을 나누었으리라. 그런데 어느 순간 이성적인 상태로 돌아와 상대를 평가하고 바라본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낯설고 싫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가까운 사이일수록 언행을 조심하고 예의를 갖추라고 충고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 오래된 친구나 아내와는 서로 감정에 기대면서 살아가면 안 될까. 좀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밀접한 관계에 있어서는 욕도 좀 하고 실수도 하면서 말이다. 이즈음서 굳이 지적을 하자면 우리는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해 교육을 받으면서 오직 이성에 대해서만 갈고 닦도록 학습하지는 않았는지 반성이 필요한 건 아닐까? 나아가 감정을 표현하는 교육이야말로 반드시 학습해야 하는 사항이 아닌지를 묻고 싶다.

김제완 사회복지법인 연광시니어타운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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