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서각의 시와 함께] 물속의 푸른 방-이태수(1947~ )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근다.

서늘하고 둥근 물소리……

나는 한참을 더 내려가서

집 한 채를 짓는다.

물소리 저 안켠에

날아갈 듯 서 있는 나의 집, 나의

푸른 방에는

얼굴 말끔히 씻은 실바람과

등불이 하나 아득하게 걸리어 있다.

 

-시집 『물속의 푸른 방』 문학과지성사, 1995.

흔히 이태수 시인을 관념의 세계를 추구하는 시인이라 한다. 그 관념도 현실 세계가 있기에 현실을 거쳐서 관념의 세계에 이를 수 있다. 시인의 관념 여행은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는 것에서 출발한다. 물소리를 서늘하고 둥글다고 했다. 청각 감각인 물소리를 촉각 감각과 시각 감각으로 인식한다. 이점이 이태수 시인만의 세계인식 방법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의 집 한 채를 가지고 있다. 어떤 이는 언덕 위의 하얀 집을, 어떤 이는 정원이 아름다운 집을, 어떤 이는 배산임수의 전원주택을, 어떤 이는 법정 스님이 사시던 오두막과 같은 집을 꿈꾼다. 그런데 시인이 물속에 지은 푸른 방이 있는 집은 사람들이 흔히 꿈꾸는 집이 아니다. 다분히 관념적인 집이다. 실바람이 불고 아득히 등불이 걸려 있는 아름다운 방이다. 마치 달리의 그림과 같은 분위기다.

우리가 처한 현실을 진세(塵世)라 한다. 흙먼지로 더럽혀진 세상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시인은 조금의 공해도 없는 지극히 깨끗한 관념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다. 온전한 세상은 없다. 그러나 온전한 세상이 있다고 믿고 그것을 꿈꾸는 자가 시인이다. 이런 시인의 꿈이 있기에 세상은 그나마 안녕한 것은 아닐까. 검은 뿔테 안경 너머로 그는 늘 미학적 공간을 꿈꾼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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