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어린 왕자를 기억하며

터키를 여행하다 보면 제일 먼저일 수도 있고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 될 수도 있는 이스탄불에 도착한다. 이곳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신시가를 끼고 도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만나게 되는데 이 해협은 지중해와 흑해를, 북유럽과 남유럽을,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바다의 중심이다.

보스포루스 해협의 푸른 물결을 가르며 마주하는 다양한 풍경들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이곳에 오면 오스만제국이 500년 동안 얼마나 광대한 영토를 통치했으며 이 제국이 누렸던 화려한 문화와 거대한 권력의 영광을 한 눈에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오스만제국의 화려했던 문화와 영광을 간직하고 있는 톱카프 궁전에 들어서면 오스만튀르크 왕국의 찬란함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비잔틴 문화의 유물과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86캐럿의 다이아몬드가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바다를 배경으로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화려한 구조물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웅장한 석조건물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것이 바로 돌마바흐체 궁전이다. 원래는 목조건물이었는데 큰불이 난 이후로 십여 년에 걸쳐 석조건물로 재건되었다. 이 궁전을 재건하면서 든 비용 때문에 오스만제국이 흔들렸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돌마바흐체 궁전의 화려함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넓고 화려한 홀에 매달린 샹들리에의 무게는 4.5t인데 750개의 촛불 램프가 눈부시게 켜져 있다. 금 14t, 은 40t이 들어간 이 궁전의 화려함을 보고 있으면 오스만제국이 누렸던 권력의 정도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이 오스만제국의 마지막 후계자가 오르한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물러난 술탄의 왕자였던 그는 15세 때 궁전 뜰에서 놀고 있다가 대신들이 울면서 내민 서류에 사인을 함으로써 그의 운명은 곤두박질친다. 그가 철모르고 사인한 서류엔 모든 왕족들의 추방 명령과 동시에 남자는 50년, 여자는 28년 동안 다시 고국에 돌아올 수 없다는 조항도 들어 있었다. 하루아침에 제국의 후계자에서 빈손의 추방객이 된 오르한이 이집트에 머물면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졌던 직업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았다고 한다. 그가 이집트에 머물렀던 이유는 언젠가 터키로 돌아갈 수 있을 때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이웃나라였기 때문이었다. 우연히 오르한이 왕족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집트인이 개인택시를 한 대 내주어 한동안 택시기사를 하기도 했지만 오스만제국의 왕자가 택시기사로 전락했다는 매스컴의 보도가 나간 후 터키에 누를 끼친다고 생각한 그는 다시 프랑스로 건너갔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자전거를 타고 놀던 15세에 그 화려한 돌마바흐체 궁전에서 추방당한 그가 다시 터키 땅을 밟을 수 있었던 것은 68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나서였다. 50년이 지난 후부터 수없는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집권세력은 정치적인 이유로 그를 받아들이지 않다가 여론에 밀려 그의 입국을 받아들였다. 83세의 나이에 고국 땅을 밟고 서서 그가 하고 싶었던 일은 단 하나, 어린 시절을 보낸 돌마바흐체 궁전에서 단 5일간만 묵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토록 그리웠던 그의 집, 돌마바흐체 궁전에 돌아온 그는 궁전의 벽을 일일이 손으로 쓰다듬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여러 직업을 거치면서 제국의 왕자로서 백성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소. 나는 그동안 땀으로 번 돈으로 살았고, 내 주머니에 부당한 돈이 들어 간 적이 없소. 누구에게도 빚이 없고 나는 오스만제국의 명예를 더럽힌 적이 없으며 더 이상 나처럼 숨어 살아야 하는 패망한 제국의 마지막 왕손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 결혼도 하지 않았소."

비록 내일을 알 수 없는 고령의 나이에 조국에 돌아왔지만, 왕자는 패망한 제국에도 찬란한 문화를 가지고 발전하는 터키 국민에게도 너무나 떳떳했다. 불행했지만 성실히 살아온 한 사람의 국민으로 우뚝 서 있는 불운한 왕자의 모습을 보며 터키 국민은 찬사와 존경을 아끼지 않았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따라 아름답게 펼쳐진 돌마바흐체 궁전에서 듣게 된 마지막 왕자의 이야기는 오늘의 우리에게 너무나 많을 것을 시사해준다. 우리가 그토록 가지고 싶어하는 부와 권력의 무상함과 주어진 운명을 껴안고 살아야 하는 나약한 인간의 존재를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었다.

황영숙/시인·대구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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