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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새 책!] 67세 등단 늦깎이 시인의 첫 시집…『나무의 유적』

나무의 유적/이은재 지음/도서출판 그루 펴냄

열아홉 되던 해부터 출판 일을 시작해, 예순을 넘겨서부터 고입 검정, 대입검정을 거쳐 대학(경북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고려대 인문정보대학원)을 마친 지은이 이은재 시인은 2012년 예순일곱에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첫 시집 '나무의 유적'은 인생을 담담하게 회고하는 작품들로 꾸며져 있다. 시인들은 종종 상처받은 삶을 '훈장'처럼 드러내지만, 시인 이은재는 결코 자비롭지 않았던 삶을 '누구나 겪는 과정'이었다고 흥얼흥얼 노래한다.

'(상략)빗소리 깃소리같이/ 천지간을 직립하던 물살들 절벽을 뛰어내리고/ 낙수를 받아 주는 저 아픈 흔적' -구룡폭포- 중에서

구룡폭포에서 시인의 눈길을 끄는 것은 거대한 신전 같은 암벽이나 축제처럼 쏟아지는 물살이 아니라 물살을 받아내는 폭포의 깊은 웅덩이다.

'서른 해 전, 방 얻으러 다니던 아내가/ 목을 뒤로 젖힌 채/ 목련 아파트 꼭대기 층까지 올려다보다/ 나도 저런 곳에서 한 번만 살아 봤으면/ 하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목련은 활짝 피었다(하략)' -아내의 정원- 중에서.

어린 삼 남매를 데리고, 밤낮없이 일에 매달리며, 끼니때마다 밥을 이고 다니던 아내는 높은 아파트를 바라보며 끝내 고개를 떨구었다. 하지만 그날 '아내의 정원'에는 목련이 활짝 피었다고 시인은 노래한다. 지난한 인생에 대한 겸허한 수긍이다.

나이 든다는 것, 절뚝거리며 한 세상을 산다는 것, 밥을 이고 다니며 자식들을 키웠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모두 '시인'임을 이은재는 보여준다. 그는 '밤새 방안까지 따라와 온밤 내 철썩대던 시어(詩魚)들이 귀 기울이면 달아난다'고 했지만, 실은 그가 날마다 '생활의 시어'를 낚아 올렸음을 이 시집은 잘 보여준다. 135쪽,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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