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일제 손에 죽기 보다 자결 택한 장진홍

"일제에 죽느니, 내 손으로 죽겠다." 경북 칠곡 인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진홍(張鎭弘)은 1895년 태어나 사형 선고로 옥살이 중 1930년 오늘 대구형무소에서 일제에 의해 죽느니보다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며 자결, 짧은 삶을 마쳤다. 1907년 일제의 강제 군대해산 후 황실경호 위한 조선보병대에서 복무하다 1916년 제대해 비밀결사단체인 광복단에 가입, 독립운동에 나섰다. 1918년 만주로 망명, 러시아 등지를 전전하며 한인들에게 군사훈련을 시켰으며 만세운동(1919년) 이후 일제의 탄압을 조사, 기록으로 남겼다. 또 보다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위해 전문가에게 폭탄 제조법을 배웠다.

직접 폭탄제조가 가능하자 일제의 탄압 앞잡이이자 수탈기관인 조선은행 대구지점과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 경북도청, 경북경찰부 등 폭파대상기관을 선정, 폭파계획을 세웠다. 첫 공격대상은 은행이었다. 1927년 10월 16일 고향 칠곡집에서 폭탄을 만들어 대구까지 운반, 선물상자로 위장하여 심부름꾼을 시켜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전달했다. 은행원의 낌새로 건물 밖으로 치운 폭탄상자는 터져 경찰 등 6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무사히 달아난 뒤 안동과 영천의 시설물 폭파도 노렸으나 실행하지 못했다. 수사망을 피해 오사카의 동생집에 숨었으나 경찰추적으로 1929년 체포돼 이듬해 재판에서 사형선고로 대구형무소 옥살이 중 자결, 순국했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됐고 왜관에 순국기념비를 세워 추모하고 있다. 1995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