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건강편지] 콩팥 두 개 다 주면 안될까?

오래전 대학 시절, 한 교수님이 이런 질문을 했다. "여러분, 배가 난파됐습니다. 구명보트는 하나뿐이고 2명만 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나와 배우자, 그리고 아들 이렇게 네 명이 있습니다. 누구를 구명보트에 태우겠습니까?"

많은 의견들이 다양한 이유와 함께 나왔다. 심지어 "아무도 타지 말고 온 가족이 함께 죽자"는 주장까지. 하지만 당시 가장 많았던 생각은 "아들과 어머니를 태우고 나는 배우자와 죽는다"는 것이었다. 아마 사랑하는 아들과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어머니를 살리는 것이 정답처럼 보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내가 부모가 돼 보니 다른 생각도 해보게 된다.

살아남은 후의 삶은 과연 어떠할까? 가족을 잃은 슬픔은 누구를 잃든 크겠지만, 특히 아들을 희생시키고 대신 살아남은 어머니는 과연 남은 생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아마도 아들을 잃은 슬픔과 아들 대신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으로 평생을 괴로워하며 불행 속에서 살 것만 같다. 그래서 같은 질문이 지금 다시 주어진다면 나는 아들과 아내를 살리고 나와 어머니는 희생하는 선택을 하겠다. 자식을 잃은 어미의 마음은 세상 그 어떤 슬픔과도 비교할 수 없기에.

콩팥이 나빠져 투석을 하는 환자들의 소원은 콩팥이식이다. 콩팥이식을 하면 힘든 투석에서 해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소원하는 콩팥이식이지만 자식들의 콩팥이식은 한사코 거부한다. "콩팥 하나를 줘도 남은 하나로 건강하게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어떻게 나 살자고 자식의 콩팥을 받느냐?"며 막무가내다.

반대로 연세가 일흔을 훨씬 넘긴 노부부가 "아들이 투석하는데 내 콩팥을 주고 싶다"고 찾아왔다. 나이가 많다고 콩팥을 주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병도 많아지고 노화 자체로도 콩팥 기능이 줄어들기 때문에 이식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할아버지 콩팥은 기능이 별로 좋지 않아서 아들에게 주기에 적당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그럼 한 개 가지고 모자라면 두 개 다 주면 안 될까요?"라며 눈물을 훔치신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콩팥이 아니라 심장이라도 자식을 위해서는 모두 다 주고 싶은 마음.

그때 그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다. "아들을 살리는 것은 본능이고 부모님을 살리는 것은 도리이다." 부모의 자식 사랑은 본능적인 무한 사랑이다. 내 몸 망가지는 것 모르고 모든 것을 주고자 하는 사랑.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 마음을 알면서도 또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 또 어리석은 자식들이다. 오늘은 부모님께 전화라도 한 번 드려야겠다.

김성호 대구파티마병원 신장내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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