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철도 민간 역사 경영 새바람
# A씨는 지난달 3일 오후 11시쯤 술에 취한 조카를 대구도시철도 2호선 만촌역에서 보호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급하게 역에 가니 조카는 오물을 뒤집어쓰고 엎드려 있었다. 역의 남자 직원은 A씨와 함께 조카를 부축하는 과정에서 오물이 옷에 묻었고, 여자 직원은 역사에 남아 있는 오물을 치웠다. 미안함과 고마움에 A씨는 두 직원에게 세탁비라며 얼마를 쥐여줬지만 한사코 받지 않았다.
# 도시철도 2호선 감삼역은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11일까지 인근 미술학원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이용객들에게 작품 감상의 시간을 제공하고 역사를 다채롭게 꾸미기 위해서다. 크리스마스 때는 교류하는 인근 교회가 역사에 트리를 설치할 예정이다.
이들 역의 공통점은 민간에 위탁해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듯 대구도시철도공사(도시철도)의 민간 위탁 역이 경영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위탁 역은 비용 절감을 통해 부채를 줄이는 데 한몫을 하고, 도시철도 퇴직자와 민간 부문의 노하우를 역사 운영에 접목해 고객 서비스 수준을 높이고 있다. 이러한 장점을 살리고 '관피아'란 불신을 털고자 올해부터는 민간 기업 출신의 지원 문턱을 낮췄다.
관계기사 5면
◆비용 절감과 다양한 서비스
민간 위탁 역의 장점은 직영 역과 비교해 운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도시철도가 1개 직영 역에 1년 동안 지원하는 금액은 약 5억5천만원. 이에 비해 민간 위탁 역의 지원금은 이보다 적은 약 3억3천만원(1개월 2천800만원'역장 급여 300만원 선)이다. 1년 동안 2억2천만원가량이 절감되는 셈이다. 즉, 전체 민간 역(16개)에서 1년에 약 36억원의 운영 비용을 절약하고 있다.
민간 위탁 역은 서비스의 질을 높이면서도 차별화에 초점을 맞췄다. 동촌역(1호선)에서는 자매결연을 한 교회가 매달 하루 이용객에게 음료를 나눠주고 있다. 성서산업단지역(2호선)에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대구지역본부의 이동식 안전버스가 출장을 와서 안전교육을 하고 있다. 또 인근 외국인쉼터에 다과와 음료를 사들고 주기적으로 찾아가 외국인 노동자들과 교류를 하고 있다.
동대구농협 출신인 배명동(61) 동촌역장은 "농협의 총무부서와 기획부서에서 30년 동안 근무하면서 사업계획을 세우는 일에 익숙하고 서비스 정신이 배어 있는 등 장점이 있다"며 "인근에 보건소와 출입국사무소, 재활원 등이 있어 역 직원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승객들이 많아 친절한 서비스 제공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했다.
한국철도공사 기관사와 부산지하철 안전관리실을 거쳐 도시철도에서 퇴직한 이상현(61) 성서산업단지역장은 책임감을 갖고 일하고 있다. 이 역장은 "도시철도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역장으로 있으면 운영이나 비상 대처에 유리할 것이라 생각해 이 자리에 지원했다"며 "도시철도 출신이 게으르게 근무하면 주위 시선도 안 좋아지기에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더 신경을 쓰고 있다"고 했다.
◆민간 참여 폭 확대할 것
경영 효율과 서비스 다각화를 위해 도시철도는 올해 민간 출신에게 진입 장벽을 대폭 낮췄다. 위탁 역장 공모에서 뽑히는 비율이 도시철도 출신은 높고, 민간 기업 출신은 낮았기 때문이다. 도시철도에 따르면 2011~2013년 모두 83명이 위탁 역장에 지원, 21명이 선정됐다. 이들 중 대구시 출신 공무원 35명이 지원해 8명이 뽑혔고, 민간 기업 출신이 27명 중 2명, 도시철도 출신이 20명 중 11명이 각각 선정됐다.
대구도시철도공사 지원관리처 관계자는 "도시철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공사 출신이 공모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측면이 있다"며 "공모 제출 서류 중 서비스 향상 방향과 인력 관리, 재정 운용, 안전 및 수송 수요 증대 방안 등을 담아야 하는 '역 운영 종합계획서'의 수준이 더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올해는 일명 '관피아'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원 자격 요건을 바꿔 민간 기업 출신의 참여를 더 늘렸다. 100인 이상 상시 고용 인원의 기업에서 관리자급 이상 직급으로 7년 이상 근무해야 했던 종전 요건을 5년 이상으로 낮췄다. 반대로 도시철도 출신은 4급 이상 직급으로 4년 이상 근무에서 5년 이상으로, 공무원은 5급 이상 직급으로 2년 이상 근무에서 5년 이상으로 지원 자격을 높였다.
도시철도는 민간 참여가 늘어나면서 우려되는 안전 문제를 개선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위탁 역장과 직원들은 한국소방안전협회가 주관하는 소방 교육(40시간)과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의 승강기 교육(4시간)은 물론 1년에 1회 이상 소방 당국과 합동소방훈련을 벌이는 등 직영 역과 똑같은 교육과 훈련을 받고 있다.
위탁 역장 공모의 외부심사위원인 조광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역의 위탁 관리 방식은 당장 수익을 늘릴 수는 없지만 인건비를 줄여 역사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다"며 "다만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만큼 안전성을 높일 수 있는 관리자가 운영을 맡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대구도시철도공사의 민간 위탁 역은 2005년 12개로 시작해 2009년 16개 역으로 확대됐다. 현재 1호선 7개 역(대명'해안'용계'월배'월촌'현충로'동촌역)과 2호선 9개 역(성서산업단지'죽전'감삼'반고개'만촌'담티'연호'고산'내당역)이 위탁 운용되고 있다. 노무사와 회계사, 변호사, 교수, 시민단체 등 외부심사위원(7명)이 역장 공모의 서류심사와 면접을 맡아 선정하고 있다. 2005년부터 현재까지 위탁 역을 거쳐 가거나 근무하고 있는 역장은 모두 45명으로 이 중 도시철도 출신이 31명으로 가장 많고, 대구시 등 공무원이 8명, 민간 기업 출신 6명 등의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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