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고를 살리기 위해 자율형 사립고(이하 자사고)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자사고를 폐지하는 게 곧 일반고 경쟁력 강화 현상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대학입시는 수시모집 위주로 바뀌고 각 대학은 학생부에 담기는 동아리, 봉사 등 다양한 교내 활동을 중시하고 있는데 일반고들은 이 같은 입시 변화의 흐름을 따라잡으려는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는지 반성하는 것이 먼저다.
대구경북은 기존 교육감들이 지난달 선거에서 승리, 자사고 정책 기조는 그다지 바뀌지 않을 전망이다. 대구경북의 자사고는 모두 6곳. 대구 4개 자사고는 광역 단위 학교여서 대구 중학생을 대상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데 비해 경북의 김천고와 포철고는 전국 단위로 신입생을 모집하는 고교다. 경북뿐 아니라 대구 중학생들도 김천고, 포철고에 지원할 수 있다는 의미다. 대구경북 자사고 6곳의 특색을 살펴봤다.
◆'깊이 있는 학습으로 학력 향상' 대구 경신고등학교
경신고등학교(교장 최성용)의 교육 방침은 학생들에게 수준에 맞는 과제를 제시, 지적 호기심을 유발시키고 자기주도학습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 같은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지도교사와 함께 '과제별 자율 활동 동아리'를 만들어 연구 활동을 하고, 그 결과를 보고서와 논문으로 작성해 '경신 학술 발표대회'에서 발표한다.
경신고가 특색 교육 프로그램으로 꼽는 것은 심화과목을 이수하고 대학과 연계해 과제연구(R&E) 수업을 진행하는 '어드밴스드 스쿨'(Advanced School). 학생들의 학문 탐구 욕구를 충족시키고 창의성과 사고력을 키우는 한편 진로를 선택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도입한 프로그램이다.
심화과목 과정은 방과후수업 형태로 운영된다. 현재 개설된 강좌는 ▷고급수학 ▷고급물리 ▷고급화학 ▷고급생명과학 ▷고급지구과학 ▷과제연구 등 자연계열 6개와 ▷영어강독 ▷심화영어 ▷국제경제 ▷국제법 ▷비교문화 등 인문계열 5개다.
특히 과제연구 수업 경우 경북대와 협력해 자연과학 분야 5과정(수학, 물리,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 인문사회 분야 4과정(경영, 경제, 철학, 심리), IT 분야 1과정 등 다양한 분야의 대학 실험 프로젝트에 참가해 논문을 작성한다.
경신고 박용택(진학부장) 교사는 "자기주도학습 능력을 키워 학력을 높이고 '어드밴스드 스쿨'을 통해 수시모집에 대비하게 한 것이 우수한 입시 실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학생 특성 고려한 교육 프로그램 운영' 대구 경일여고
경일여고(교장 강산복)는 학생의 선택을 존중하면서 학생의 수준과 특성에 맞춘 교육을 지향한다.
경일여고의 방과후학교 수업은 학생들이 자신의 수준에 맞춰 수강 과목과 담당 교사를 직접 선택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한 수업당 수강 인원도 20명 이내로 제한해 교사와 교감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렸다. 장래희망, 적성을 고려하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진학 전략을 구체화하는 '맞춤형 입시 전략 프로그램'(로드 투 마이 드림'Road to My Dream)도 가동 중이다.
'단계별 글쓰기 활동' '100분 독서토론'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얻고 창의력을 키우기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독특한 예체능 교육 프로그램은 경일여고의 자랑거리다. 매주 화요일 1인 1악기 수업을 진행하고, 14개의 개인 피아노 연습실은 언제든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한다. 오후 10시에는 선택형 방과후 체육수업을 진행한다. 운동으로 하루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땀을 흘린 뒤 바로 쉴 수 있어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다. 점심시간을 80분으로 편성해 필라테스, 요가 등을 배울 수 있도록 한 '매일 운동 프로그램'(Daily Sports Program)도 운영한다.
경일여고 정용호 교감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공부든, 운동이든, 악기 연주든 최선을 다하는 것이 경일여고의 문화다"라고 했다.
◆'한 세기를 이어온 전통의 힘' 대구 계성고등학교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계성고(교장 유철환)는 내년 서구 상리동 신축 교사로 옮겨 제2의 도약을 꿈꾼다.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사회에 봉사하는 인재를 기른다는 것이 남녀 공학인 계성고의 교육 목표다. 계성고가 스스로 꼽는 강점은 2009년 대구에서 가장 먼저 자사고로 전환한 고교답게 다양한 면학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계성고는 경북대 과학연구소와 협약을 맺고 과제연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학생들은 주말 시간을 이용해 담당 교수의 강의를 듣고 탐구하는 과정을 거친 뒤 논문을 작성, 교내 대회에서 발표한다.
지난해까지 세 차례 열린 '계성고 모의 유엔 대회'(KAMUN'Keisung Academy Model United Nations)는 계성고의 이색 학술 행사로 학생들이 주도하는 것이다. 재학생들로 이뤄진 사무국이 행정, 재무, 디자인 등 대회 계획 수립과 진행을 도맡고 있다. 학생들이 세계 각국의 대표 역할을 맡아 다양한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대안을 고민해보는 대회다. 1학년 중 희망 학생을 대상으로 겨울방학 때 해외 어학연수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계성고 현창용 교감은 "선'후배가 결연, 장학금을 지원하는 멘토 장학 프로그램 등 오랜 역사 동안 계성고를 거쳐 간 동문들의 지원은 큰 힘이 된다"고 했다.
◆'다양하고 알찬 교육 과정으로 주목' 대구 대건고등학교
대건고(교장 이두영)는 인성 교육, 학생들의 꿈과 끼를 살리는 교육 과정을 강조하는 곳이다.
가톨릭 계열 학교인 대건고가 지난 한 해 펴낸 책을 보면 얼마나 다양한 교육 활동이 이뤄지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지하철 1호선 타고 떠나는 대구 역사 여행'은 역사학자나 박물관 큐레이터 등을 꿈꾸는 학생들이 모인 '역사탐구반'이 쓴 책. 대구도시철도 1호선을 이용해 월곡역사공원, 달성공원, 불로동 고분군 등을 탐사한 뒤 작성한 보고서를 책으로 엮었다.
'대건청론(淸論)'은 2012년부터 실시한 교내 학술논문대회 수상작을 모은 책이다. 가족 구술사 프로그램은 진정한 인성 교육은 가정에서 시작된다는 믿음에서 시작한 것. 1학년 전교생이 참가해 지역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각자의 가족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적었고 그 글들은 '대건열전'이라는 책으로 묶여져 나왔다.
'신(新)대구여지승람'은 대건고 1, 2학년 학생과 그들의 아버지가 함께하는 '부자 동행 대구 둘레길 걷기' 프로그램의 결과물이다. 이 프로그램은 부자 사이를 돈독히 하는 기회를 만들고 대구의 문화, 역사, 지리, 생태 등을 배우는 과정이다.
대건고 이대희(입학'진학팀장) 교사는 "변화하는 교육 환경에 맞춰 특색 있는 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덕분에 국제청소년학술대회(ICY), 대구경북 청소년 학술대회, 대한민국 창의력올림피아드 등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고 했다.
◆'송설3품제 등 전인교육 지향' 김천고등학교
김천고(교장 이병석)는 전인 교육을 위한 '송설3품제', 3학기제 등 독특한 형태의 교육 과정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다.
송설3품제는 김천고를 대표하는 교육 프로그램. 송설은 학교 설립자인 송설당 여사의 호에서 빌려온 것이고 3품은 덕'체'지품를 이르는 말이다. 김천고는 덕품, 체품, 지품을 모두 달성한 학생에게 인증서를 준다. 봉사활동, 1천m 이상 고산 5개 이상 등반, 학력 우수상 수상 등 덕, 체, 지 각 분야의 일정 기준을 달성하면 품격을 취득한 것으로 인정한다.
김천고의 교육 과정은 3학기 제다. 1, 2학기 외에 겨울방학을 이용해 겨울학기를 운영한다. 겨울학기와 매주 화요일 8, 9교시에 고급수학, 과제연구 등 심화과목 수업을 진행한다. 또 사교육에 의존하기 않기 위해 학생 5명 이상의 요구만 있으면 맞춤형 특강을 평일 야간이나 주말에 개설해주고 있다.
'토마독'(토요일 마라톤 독서교실)은 김천고의 이색 독서 교육 프로그램. 매월 2회 토요일 오후 1시부터 10시까지 학교 도서관에서 집중적으로 책을 읽은 뒤 독서 기록지 작성, 소감 나누기, 문학 기행 등을 진행하는 것이다.
김천고 박윤상(3학년 부장) 교사는 "교사 평균 연령이 40세가 안 될 정도로 젊어 열정이 넘치는 데다 학교 법인의 지원도 든든해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더욱 큰 학교"라고 했다.
◆'늘 새로운 시도로 우수 인재 양성' 포항제철고등학교
포철고(교장 김홍규)는 다른 곳보다 한발 앞서 새로운 교육 과정을 도입, 성공적으로 정착시켜온 학교다. 자사고뿐 아니라 일반고가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과제연구 프로그램만 해도 지역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곳으로 꼽힐 정도다.
그동안 포철고를 말할 때 자주 언급되던 것은 'H.S.P'(Honors Students Program).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대학 교수를 초빙해 수학 심화 학습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팀을 이뤄 진행하는 과제연구와 더불어 학생 각자가 연구 주제를 정한 뒤 보고서나 소 논문을 작성하는 'IR'(Individual Research) 프로그램도 활성화돼 있다.
포철고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프로그램 'IBP'(Integrative Investigation Basic Program)를 도입했다. 이는 창의력을 기르고 대학 전공 분야 탐구에 필요한 분석력, 문제 해결력을 높이기 위해 개설한 것이다. 포스텍 교수 등 전문가 그룹을 초빙해 프로그래밍 언어, 수학사와 과학사 탐구, 인문고전과 사회과학 탐구 등의 과정을 진행한다. 프로그래밍 언어 외에는 영어 원서를 사용하고 토론식으로 수업을 운영한다.
포철고 박석현 교감은 "학생이 교사와 신뢰 관계를 구축, 정서적으로 안정된 환경 속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지난해부터 포스코교육재단 차원에서 전 교사의 상담교사화를 추진 중이다"며 "진학 실적에 더해 학생들이 즐거워하는 학교를 만드는 데도 힘쓸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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