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내면에 꿈틀거리는 욕망을 잘 다독이며, 자신만의 공간을 지키고, 깊은 내면을 이웃과 나누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 주변에는 같은 길을 걷는 친구들이 하나씩 늘어납니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 혼자서도 행복할 줄 아는 개인, 사냥꾼의 광기 속에서 남을 지켜주려는 따뜻한 이웃,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서로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동지들이죠. 그런 개인들과 아주 작은 연대가 싹트고 나면, 이 험한 정글 속의 삶도 훨씬 견딜 만합니다. (김두식의 '욕망해도 괜찮아' 중에서)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으로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잠자는 일만큼 쉬운 일도 없는데 그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밤 1시와 2시의 틈 사이로, 밤 1시와 2시의 공상(空想)의 틈 사이로,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다(오규원의 시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에서 인용)'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잘 사는 것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잠을 자야 하는 시간에는 자는 것이 잘 사는 것이겠지요. 주어진 틀은 틈을 만들지 않습니다. 틀대로 살아가면 내가 편합니다. 틀을 존중하고 그 틀에서 벗어난 존재들을 보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지요. 밤 1시와 2시 사이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사실을 무시하면 잘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그것이 진정 잘 사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그것이 소위 잘못 사는 것이라면 그럴 땐 차라리 잘못 사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밤 1시와 2시의 틈 사이로 모두가 잠들었을 때 깨어 고민하는 삶, 그것이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삶일 수도 있습니다.
그 시간에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지만 알고 보면 내 안의 나를 만나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을 통해 내 안의 나를 만날 때 무척 힘들기도 했습니다. 내 지난날의 부끄러운 모습들과 지금의 힘든 풍경들과 앞으로의 고단한 삶이 거기에 숨 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목소리 말입니다. 자신이 위치한 좌표 속에서 질문의 내용은 이질적이었습니다. 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의 각도, 세대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풍경도 달랐습니다.
질문의 구체적인 내용은 어쩌면 크게, 또는 조금씩 달랐지만 대부분 그들은 묻고 있었습니다. '와? 와? 와 그라는데?'라고요. 정말 왜 그럴까요? 왜 그러는지에 대한 질문의 대상은 자신일 수도 있고, 타인일 수도 있고, 사회일 수도 있고, 국가일 수도 있고, 세계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 무언가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의문 말입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분명 괜찮을 텐데 그렇게 하는 것을 지켜보는 곤혹스러움? 바라는 것은 사소한 행복인데 왜 그것도 용납하지 않을까 하는 원망스러움? 천천히 걸어가도 되는데 자꾸만 달려나가기를 요구하는 세상에 대한 답답함? 충분히 견디고 있는데 더 견디라고 요구하는 시대에 대한 억울함? 몰라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을 텐데 앎을 강요하거나 알고 싶은데 모르고 사는 것이 옳다고 말하는 억지스러움? 타인들은 모두가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나만 이렇게 힘들게 살아간다는 슬픔? 이런 마음들이 '와 그라는데?'라는 표현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삶을 견디는 방법이 있습니다. 먼저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욕망을 다독이며, 함께 걸어가는 친구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힘들 땐 투정하기도 하고, 기쁠 땐 그것을 나누기도 하고, 슬플 땐 함께 울어주기도 하는 친구 말입니다. 그것만 있어도 삶은 충분히 견딜 수 있는 것이더라고요. 지금 한번 옆을 보세요. 친구가 되어 함께 걸어갈 사람이 분명히 곁에서 당신을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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