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여우 털과 포도

'백 마리 양의 껍질보다 한 마리 여우의 겨드랑이털이 낫다'(百羊之皮 不如一狐之腋)는 말이 있다. 풀이하면 아첨하는 백 명의 사람보다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한 사람이 더 귀하다는 뜻이다. 언뜻 이해하기 힘들지만 고분고분한 양보다는 잡기 까다로운 여우가 더 값어치가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총동원령 태세로 반드시 잡겠다고 난리 쳤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40여 일 전 순천에서 이미 죽었다는 보도에 문득 이 고사가 생각났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까맣게 모른 채 노심초사 엉뚱한 곳만 들쑤시다 뒤늦게 사망을 확인한 검찰과 경찰의 망신도 망신이지만 혹시 대한민국 사법기관이 백 마리 양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검'경이 알고서야 그렇게 했겠느냐만 반드시 검거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다그침에도 석 달 가까이 헛발질만 하다 죽은 유병언이 검'경 인사(人事)를 하는 신세에 놓인 것이다. 무능의 결과치곤 너무 한심하고 허망하다. 아마추어보다 못한 상황판단으로 수사력을 낭비한 경찰도 딱하지만 시신 확인 전날 6개월짜리 구속영장을 재발부한 검찰 꼴도 말이 아니다.

최근 서울시의원의 살인교사 여부를 놓고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재력가 살인 사건에서도 검'경은 뇌물 장부를 놓고 한바탕 꼬리 물기를 하며 티격태격했다. 이런 마당이니 유병언을 잡으려고 소동을 벌인 게 아니라 검'경이 서로를 잡기 위해 엇박자를 내고 숨바꼭질한 게 아니냐는 비아냥마저 나오고 있다.

어느 책에 나오는 우화다. 페르시아인, 아랍인, 터키인, 그리스인이 며칠을 굶은 채 사막을 헤맸다. 페르시아인이 '앙구르' 하나만 먹을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하자 아랍인이 정말 맛있는 것은 '이납'이라고 퉁을 놓았다. 터키인은 '우줌' 보다 더 맛있는 것은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우겼다. 그리스인은 그래도 '이즈타필' 보다는 못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서로 맞니 어쩌니 논쟁을 하다 주먹다짐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마침 현자가 싸우는 소리를 듣고는 혀를 찼다. "모두 포도를 놓고 왜 싸우는 거요?"

국민들 눈에 지금 검'경이 그 짝이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한 건지 알면서도 상대를 물 먹이려는 의도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두 마리 범이 서로 싸우면 늙은 개가 그 틈을 타 이익을 얻게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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