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술로 확인하는 경상도 친구맞네∼

경상도 개도 700년 기념 특별전…국립경주·상주박물관 공동기획

올해는 '경상도'(慶尙道)라는 도명(道名)이 사용된 지 700년이 되는 해이다.

'경상도'라는 이름은 경주(慶州)와 상주(尙州)에서 따온 것이다. 국립경주박물관과 상주박물관은 공동기획으로 경상도 개도 700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경상북도(慶尙北道) 1314~1896'을 22일부터 내달 14일까지 개최한다.

특별전에는 '경상도'라는 도명이 정해진 1314년(고려 충숙왕 원년)부터 '경상도'가 '경상북도'와 '경상남도'로 나누어진 1896년(고종 33년)까지, 경상북도 사람들이 이룩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삶의 큰 흐름을 돌아본다. 경상북도와 그곳 사람들의 다양한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200여 점의 문화재도 전시하고 있다. 이 가운데에는 국보 1점(안향 초상)과 보물 12점을 비롯해 경북 유형문화재 4점, 경북 문화재자료 1점, 경북 민속자료 5점, 부산 유형문화재 1점 등의 지정문화재가 포함돼 있다.

특별전은 경상감영의 변천에 따라 1부 경상도의 등장(1314~1392), 2부 경상 감영 Ⅰ기(경주'상주 시기/ 1392~1593), 3부 경상 감영 Ⅱ기(성주'달성'안동 시기/ 1593~1601), 4부 경상 감영 Ⅲ기(대구 시기/ 1601~1895) 등 4부로 구성됐다.

1부 경상도의 등장에서는 경상도의 역사와 도명의 변천사, 그 위상 등을 상세히 기록한 '경상도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문헌 자료와 함께 경상도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고지도들이 전시된다.

2부 경상 감영 Ⅰ기는 조선 전기 경상도에는 많은 인재들이 등장해 학문이 발달하고 문화가 융성했는데, 경상도의 최고행정기관인 감영은 조선 개국 초에는 경주에 있었으나, 1408년(태종 8년)에 상주로 옮겼다. 상주 감영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듬해인 1593년(선조 26년)까지 존속했다.

3부 경상 감영 Ⅱ기는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의 발발로 경상도 전역이 전쟁터가 되어 상주 감영은 기능할 수 없게 됐다. 감영은 1593년 성주 팔거(현재 칠곡), 1596년 대구 달성, 1597년 안동 등으로 옮겨 다녔다.

4부 경상 감영 Ⅲ기는 조선 후기의 경상도는 성숙한 문화의 꽃을 피우며 새로운 변혁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감영과 관련된 자료로서, 1617년(광해군 9년) 경주부윤을 지낸 윤효전(1563~1619)을 그린 것으로 전하는 초상(보물)과, 조선 후기의 수사기록인 영영옥안(嶺營獄案), 도내 지방관 명단인 도내관안(道內官案) 등이 전시된다.

이처럼 경상도 사람들은 예부터 공동체를 이루면서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왔다. 신라와 고려, 조선시대의 경상도도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영훈 국립경주박물관장은 "경주는 고려시대에도 '동경'(東京)으로 불리면서 독자적 위상을 유지했다. 조선시대에는 '조선 인재의 절반이 영남에 있다'(朝鮮人才 半在嶺南)고 기록될 정도로 경상도에서는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나왔다"면서 "이번 특별전이 이러한 경상북도의 역사문화와 사람들을 이해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