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부모님을 만나면 한국말로 대화하고 싶어서 한국어 공부도 했어요."
4살 때 미국으로 입양 간 김경미(미국 이름 아이비 경미 휘태커'34) 씨가 가족을 찾고자 31년 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1981년 4월 24일, 한 어린이가 동대구역 대합실에서 홀로 울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이 어린이를 발견해 역전파출소에 맡겼고, 이 어린이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가 운영하는 백합보육원에 들어갔다. 이 어린이는 발견 당시 '김경미, 1979년 11월 24일 9시 10분'이라고 적힌 쪽지를 갖고 있었다. 4주가량을 보육원에서 지낸 김 씨는 1981년 5월 14일 대구 대성원(현재 대구아동복지센터)으로 옮겨졌고, 2년 후인 1983년 7월 2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한 가정으로 입양됐다.
부산에서 군 생활을 한 양아버지는 미국으로 돌아가서도 한국인 아이를 입양하고 싶어 했다. 김 씨와 함께 지금의 여동생도 한국에서 입양해 친자식처럼 키웠다. 하지만 아이를 원치 않았던 양어머니는 두 수양딸을 못마땅해했다.
"모르는 사람이 저를 트럭에 태우려고 하는 악몽도 자주 꿨어요. 제가 가족과 떨어졌다는 사실에 스트레스를 받았었나 봐요."
그동안 가족을 찾아 한국에 오고 싶어 했지만 늘 주저했다. 양어머니가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리 상담을 전공한 미국인 남편이 힘이 돼 줬다.
"남편은 친부모를 찾는 일이라면 양부모에게 맞서도 괜찮다며 용기를 심어줬어요." 김 씨는 틈틈이 가족들과 함께 한인교회에 나가며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아직은 겨우 인사말 정도만 할 줄 알지만, 언젠가 만날지 모를 친부모님과 얘기를 나누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한국에 오게 된 것도 남편 덕분이었다. 남편이 두 아들과 함께 프랑스로 가족 여행을 하는 길에 한국을 경유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경찰서에 DNA를 등록한 김 씨는 친부모를 찾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안고 프랑스로 떠났다.
"엄마가 저를 포기하는 결정을 내리기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이제는 이해하고, 고마워요."
문의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대구관구 053)659-3333.
홍준표 기자 agape1107@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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