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는 극장가 여름 성수기 블록버스터 빅4 중 마지막으로 개봉한다. '군도' '명량' '해적'에 이은 작품이다. '해무'는 앞의 작품들과 확연히 다른 색을 입었다. 스타들의 출연, 컴퓨터 그래픽으로 마감한 완성도 높은 비주얼, 대규모 군중 신과 액션 신으로 강화되는 스펙터클 등이 특징인 블록버스터의 공식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둔다. 영화는 그동안 한국영화에서는 드문 소재였던 선원의 세계를 다룬다. 한국영화 중 배 위에서의 생활을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로 정진우 감독, 하재영'나영희 주연의 '백구야 훨훨 날지마라'(1982) 정도가 떠오른다.
'해무'는 선원들의 거친 세계를 현실감 있게 그려내며 새로운 소재의 영역을 개척한다. 배 위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인간군상은 우리 사회에 대한 상징이자 우화로 기능한다. 보이지 않는 계층 구조로 공고화되어 있으며, 시스템의 붕괴와 인간성의 상실이라는 거친 풍랑 속으로 좌초한 우리의 현실 말이다.
망망대해의 바다가 더욱 폐쇄적인 공간으로 다가오는 오싹함, 그 한가운데 밑바닥으로 떨어진 인간들이 드러내는 야만적 본능의 파노라마가 전개된다. '바다 안개'라는 뜻의 '해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영화 장르는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펼쳐지는 '해양 심리 스릴러' 정도로 칭할 수 있다.
'해무' 역시 다른 빅3 영화에 버금가는 100억원의 예산이 투여된 거대예산 영화이다. 게다가 최근 몇 년간 영화배급의 강자로 부상한 NEW가 올여름 앞세우는 작품이라 기대치가 높다. CJ, 롯데, 쇼박스처럼 자체 극장라인을 갖추지 못한 약점을 가진 투자배급사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NEW는 지난 한 해에만 '7번방의 선물' '신세계' '감시자들' '숨바꼭질' '변호인' 등 성공작들을 연이어 내놓았다.
그러나 '해무'는 새로운 한국영화를 기다리는 관객을 위한 틈새시장을 공략할 것인지, '명량'과 '해적'의 관람 뒷심에 묻혀버릴 것인지의 기로에 놓여 있다.
영화는 1997년 IMF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응답하라' 시리즈나 '건축학개론'처럼 1990년대를 낭만적으로 회고하지 않는다. 서민을 중심으로 한 많은 이들이 악몽처럼 기억하던 그 시절의 차가운 공기를 담는다. 동시에 한 배에 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선장들이 침몰하는 배를 두고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그리고 다양한 욕망을 가진 개인들의 요구는 어떻게 조정될 수 있는지 등의 수많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보여준다.
한때 여수 바다를 주름잡던 전진호는 감척 사업 대상이 된다. 배를 잃을 위기에 몰린 선장 철주(김윤석)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선원들과 낡은 전진호에 몸을 싣는다. 배에 숨어 사는 사연 많은 기관장 완호(문성근), 선장의 명령을 묵묵히 따르는 행동파 갑판장 호영(김상호), 돈이 세상에서 최고인 거친 경구(유승목), 욕구를 배출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는 창욱(이희준), 이제 갓 뱃일을 시작한 순수한 막내 동식(박유천) 등 여섯 명은 출항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들이 실어 나르게 된 것은 생선이 아닌 사람이다. 선장은 배를 지키기 위해 중국인 밀항자들을 나르는 일을 제안한다. 운명의 한배를 타게 된 여섯 명의 선원과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는 밀항자들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해무가 몰려오는 바다 위에서 걷잡을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린다.
'살인의 추억'(2003) 각본을 쓴 심성보 감독의 데뷔작이며, 봉준호 감독이 제작자로 이름을 올려 영화에 대한 기대감은 한층 더 높아진다. 서민들이 살아가는 한국 사회의 한복판에서 격랑의 사건에 휘말린 인간의 욕망과 선택을 보여주며 한국형 리얼리즘 스릴러의 영역을 개척한 봉준호 감독이 참여한 작품이기에, 영화는 봉준호 세계와 유사한 감각을 표출하지만, 동시에 심성보만의 개성적인 색이 입혀진다.
오락성보다는 인간 실존을 둘러싼 문제의식으로 충만한 작품성에 방점을 찍었다. 빅3의 순항 한가운데, 인간 본능에 대한 섬뜩한 묘사가 살아있는 '해무'의 건투를 지켜볼 일이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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