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자 참여마당] 수필-지하철에서 쏟아지는 빛을 보신 적이 있나요?

김상민(대구 북구 산격4동)

어두컴컴한 지하를 달리는 지하철을 타다 보면 세상이 암흑투성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것이 착각이라는 걸 알려준 소금 같은 순간이 있었다.

대구역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집으로 가던 나는 안내방송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다. 앞서 가던 열차가 사고가 나, 내가 탄 열차는 1시간가량 늦게 도착한다는 것이었다.

택시비가 없는 탓에 불안하고 초조했다. 보던 책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고, 가슴이 방망이질 치는 탓에 저녁에 먹었던 떡국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대구역에 도착하자마자 버스를 타려고 무거운 짐을 안고 정신없이 뛰었지만, 소용없었다. 내일까지 보고서를 내야 하는 탓에 눈앞이 깜깜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역으로 가 아무나 붙잡고 통사정을 했다.

역무원들은 항의를 많이 받은 탓인지,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결국 역무원들과 실랑이까지 벌이게 됐다.

화를 삭이고 있는데 한 분이 다가왔다. 자초지종을 듣고는 집까지 가는 택시비를 주었다. 순간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 한 게 미안해서, 제복에 적힌 그분 이름을 수첩에 적고는 지하철을 탔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라 사방이 어두웠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조건 없는 친절을 베푸는 분 덕분에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교회 십자가가 내는 한 줄기 빛처럼.

다음 날, 보고서를 다 쓰고 나니 수첩에 적힌 이름이 눈에 크게 들어왔다. 급히 적은 탓에 '민'인지 '문'인지를 알 수 없었지만, 무작정 전화해 '그분을 찾아서 친절 사원으로 추천해 달라'고 했다.

이틀 뒤 전화가 왔다. 그분을 찾았다는 것이었다. 알고 봤더니 한 달 전에 결혼한 새신랑이었다.

그날 이후로 지하철을 탈 때마다 쏟아지는 한 줄기 빛을 느낄 수 있었고, 나도 빛이 되고 싶다는 간절함이 샘솟았다. 이제 지하철을 타는 시간은 암흑이 아닌 광명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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