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건 이후 한국정치는 환멸감이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무엇이든 다 해줄 것 같았던 대통령은 여의도로 공을 떠넘기고 국회는 정쟁으로 허송세월한다. 이 참사를 교통사고쯤으로 여기는 자나, 정당 간 합의를 거듭 파기하는 자나 환멸감을 주기는 마찬가지다. 300명의 의원이 법령 하나 제정하지 못한 탓에 팽목항의 유족은 광화문의 노숙자가 되었다. 오히려 노구의 교황과 함께 보낸 닷새가 꿈만 같은 치유의 시간이었다.
꿈을 깨니 다시 아귀다툼의 세상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의 정치 파행은 제1 야당에 절반의 책임이 있다. 비전도 대안도 결기도 무엇 하나 없다. 더욱이 고질적인 집안 싸움에다 여당에 끌려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그나마 여당은 기율과 전열을 정비하고 국민에게 읍소한다. 그래서 민심은 자명했다. 지난 7'30 재'보궐선거에서 야권 전체가 몰패했다.
7'30 재보선 이후 제1 야당에 대한 끝없는 질타는 응당한 과보다. 피아 할 것 없이 흠씬 두들겨대고 날 선 비판을 쏟아낸다. 고질적 계파갈등, 불통 리더십, 귀족 정치 행태, 경직된 노선투쟁, 정책대안 실종 등등. 제1 야당의 몰락은 익히 다 아는 이런 과보 탓이다. 귀가 따갑고 진부하기조차 하다. 그래서 새정치연합은 박영선 비대위를 내세웠다. 말머리에 공감과 혁신 운운하는 그럴 듯한 수사도 달았다. 그러나 분골쇄신보다는 업보 놀음으로 끝날 공산이 더 커 보인다. 왜냐고? 왠지 뻔한 레퍼토리인데다 시작부터 되는 일이 없다. 국민들은 여전히 이 정당에 환골탈태의 진정성, 의지, 능력이 있는지 회의하고 있다.
새정치연합을 몰락시킨 이런저런 원인 진단은 대체로 온당하다. 그러니 말을 더 보탤 이유가 없다. 반면 그 원인이 고쳐질지는 지극히 의문스럽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다 내성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알고도 못 고치는 병이 새정치연합의 진짜 중병이다. 가령 계파 갈등이 없어질 것이라고 누구도 기대하지 않는다. 말만 무성한 새 정치 타령에 정작 내려놓은 기득권도 없다. 어느 날 불세출의 리더가 나타나 이 당을 평정할 일도 없을 듯하다. 그럼에도 새정치연합은 2부 리그의 패권자다. 수권 능력은 턱없으나 생계에 지장은 없고 기득권도 향유할 수 있다. 마치 거대 자본과 공생하는 노동귀족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니 적절한 몸 사리기와 임기응변으로 이 정치 귀족이 환골탈태하기란 요원해 보인다. 지금 새정치연합에 필요한 것은 식상한 면면의 위원회 놀음이 아니다. 그런 말 잔치는 몇 번이고 실패로 끝났다.
새정치연합의 회생이 의문스러운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신념윤리만 팽배하고 책임윤리가 없다는 것이다. 베버(Max Weber)는 이미 100년 전에 정치인의 자질을 이렇게 구분했다. "신념윤리형 정치인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좇아 행동하되 결과는 책임지지 않는다. 반면 책임윤리형 정치인은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까지도 책임진다." 새정치연합의 계파정치에 응당 책임윤리 문화는 없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이후를 보시라. 지려야 질 수 없다던 선거에서 연패했지만, 책임져야 할 누구도 '내 탓이오'라고 고백한 바 없다. 오히려 서로에게 책임을 떠 남기는 '네 탓이오' 타령이 이 당의 습성이다. 특히 패권 계파일수록 남 탓하는 목청은 더 크다. 만연한 습성을 일소하기란 눈 가리고 아웅 하기 격이다.
대한민국은 양당제 사회다. 수권능력을 갖춘 두 정당이 경합하며 권력을 교체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강한 여당과 허약한 야당이 양당제를 점차 1.5당제로 이끌어가고 있다. 제1 야당의 역량이 여당의 반쪽이기 때문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자살골을 먹는 것이 야당의 현재 실력이다. 그래서 '직업이 야당'이라는 조롱이 더욱 뼈아프다. 2003년 열린우리당부터 10년 동안 새정치연합은 이름표를 7번 바꾸어 달았다.
2부 리그 기득권에 안주하고 책임윤리를 저버리는 이상 제1 야당의 적폐는 청산되지 않는다. 그리고 1.5당제가 정착되면 지지자들은 진보를 파산시킨 책임을 새정치연합에 준엄히 추궁할 것이다. 박영선 비대위가 적폐를 청산하지 못한다면 횃불을 들어야 할지 모른다. 당원과 지지자들로부터 일어나는 풀뿌리 정풍 운동의 횃불 말이다.
장우영/대가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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