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석만 하면 학점 '수강권' 10만원에 넘깁니다?

게시판 매매 글 수십건, 당사자끼리 수강신청 변경

지난달 18일 A대학교 4학년 박모(25) 씨는 학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서 "'창업길라잡이' 강의를 10만원에 팝니다" 라는 글을 보고 작성자를 만나 이 강의의 '수강권'을 샀다. 시험 없이 출석만 잘하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4학년 전용 교양 수업이라 박 씨가 미리 점찍어 뒀지만 신청에 실패했던 과목이다. 그는 판매자와 학교 근처 PC방에서 만나 동시에 수강 신청 사이트에 접속했다. 판매자가 해당 과목 수강 신청을 취소하자마자 박 씨가 바로 이를 신청하고 돈을 건넸다.

수강 신청 기간 대학생들의 수강권 암거래가 성행하고 있다. 인기 교양과목을 우선 신청한 학생들이 다른 학생에게 돈을 받고 넘기는 일이 인터넷 등을 통해 자주 벌어지고 있다.

대구경북 일부 대학교의 홈페이지나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강의 매매 게시물이 수강 신청 기간인 지난달 중순부터 개강일(대부분 이달 1일)까지 수십 건씩 올라오고 있다. 인기 과목은 스포츠와 자기계발 등 시험 부담이 없는 교양 수업이거나 인터넷 강의다. 작성자가 게시물에 매매할 강의명과 희망 가격, 연락처를 써 놓으면 다른 학생이 이를 보고 팔거나 사는 방식으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가격은 1만원에서 10만원까지 다양하다.

경북대의 온라인 학생 커뮤니티 익명게시판에는 이 같은 게시물이 지난달 중순부터 말까지 60건 이상 게재됐다. 한 교양과목의 매매 글 아래에는 2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영남대와 계명대의 홈페이지에도 강의 매매 게시물이 올라왔고, 실명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거래가 끝난 뒤 게시물은 지워지고 없는 상태다. 강의 뒷거래가 이뤄지는 이유는 강의마다 수강 인원이 제한된데다, 학생들이 성적을 받기 쉬운 과목을 선호하는 탓이다.

B대학 4학년 이모(24) 씨는 "취업준비생들은 출석만 해도 학점이 인정되거나 쉽게 학점을 받을 수 있는 과목이 게시판에 올라와 있나 살피게 된다"며 "개강 후 수강 정정 기간에도 이 같은 매매가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대학 측은 강의 거래가 비공개로 이뤄지기 때문에 현실적인 제재 방법이 없다고 했다. 한 대학의 학사과 관계자는 "인터넷을 통해 만난 학생끼리 오프라인에서 거래하니 학교 전산 시스템만 봐서는 학생들이 거래를 한 것인지 단순히 수강 취소와 신청을 한 것인지 구분할 길이 없다"며 "매매를 막으려고 수강 신청 기간을 줄이는 등의 방법을 도입하려 했지만 선량한 학생들이 피해를 볼 수 있어서 다른 대책을 찾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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