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신화기행/공원국 지음/민음사 펴냄.
그리스'로마 신화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그보다 훨씬 넓은 대륙의 신화를 기행기 형식으로 전하는 책이 출간됐다.
유라시아(Eurasia)는 아시아와 유럽을 일컫는 말이다. 유라시아의 면적은 52,990,000㎢에 이르고, 인구는 50억 명에 달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흔히 듣거나 읽는 이야기는 지중해 너머 그리스와 로마 신화가 대부분이다.(기록이 많지 않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신화에 대해서도 많이 읽지는 않을 뿐만 아니라, 지중해 일대의 서사를 소비하는 데만 골몰한다.
이 책 '유라시아 신화기행'은 몽골 고원과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중국, 히말라야 남쪽 인도아(印度亞)대륙까지 여행하며 기록한 책이다. 우리가 여태 접하지 못했던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지나라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시아버지는 매일 동틀 무렵 집을 나섰다. 그녀는 시아버지가 매일 어디로 가나 궁금해서 몰래 따라나섰다. 시아버지는 자작나무 숲 가장자리에 이르더니 통나무를 굴렸다. 그러자 시아버지가 곰으로 변해 숲으로 들어갔다. 지나도 그 통나무를 굴렸다. 그러나 통나무를 굴리다가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그녀의 몸은 곰으로 변했으나 다리는 사람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그녀는 다시는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겨울을 날 굴을 찾지 못하고 죽었다.' 러시아 북서부 우랄산맥 서쪽에 자리한 '코미 공화국'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다.
사람모습을 한 다리는 아마도 다친 곰을 말하는 것일 게다. 이 지방 사냥꾼들에게는 다친 곰을 죽이지 않는다는 금기가 전해오고 있다. 이 이야기는 또 동면에 들지 못한 곰이 매우 위협적임을 나타낸다.
지은이는 모든 길이 이어져 있음을 강조한다. 알타이는 몽골 고원을 넘어 한반도로 이어지고, 투르크를 통해 유럽과 페르시아 세계로 이어져 있다. 페르시아는 유럽을 인도-투르크로 연결시켰고, 파미르와 히말라야의 낮은 봉우리를 따라 중국과 인도가 이어졌다. 인도는 해안을 따라 동남아사이와 이어지고, 동남아시아는 북쪽 산길을 따라 중국과 이어진다. 태고부터 유라시아 세계는 이야기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책은 '신화 즉, 이야기는 길을 따라 끊임없어 흘러왔다. 길을 따라 이어진 문명지대의 역할은 도도히 흐르는 지혜, 즉 이야기의 물줄기를 막히지 않고 다른 지역으로 흐르게 하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거기에 얼마간의 영양소를 보탤 수도 있지만, 그저 통로로서 역할을 하는 것도 똑같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유라시아 신화'와 '그 땅'에 대해 이야기하는 까닭을 이렇게 설명한다.
'길이 끊어지면 이야기가 끊어지고, 이야기가 끊어지면 반지혜(反智慧)가 생겨난다. 무지와 무시, 혐오와 집착, 학살과 숭배가 자라는 것이다. 오늘날 길은 국경으로 인해 너무나 자주 끊어지고, 길이 끊어지는 곳에서는 여지없이 반지혜의 결정체, 바로 우생학과 대학살이 벌어졌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몽골 초원과 바이칼부터 모스크바, 우크라이나에 이르는 여정을 통해 초원의 지혜가 담긴 북두칠성 이야기, 시베리아 원주민의 곰 숭배 의식 등을 들려준다. 또 썩은 나무도 함부로 자르지 않는 우데게족의 믿음을 통해 진정한 문명이 무엇인지 묻는다.
2부는 터키를 가로질러 카프카스를 지나, 페르세폴리스와 다마반드를 비롯한 페르시아 신화의 중심 무대를 탐험하고, 엘부르즈를 넘어 카스피 해로 이어지는 여정을 그린다. 여기서는 신에게 대항한 영웅 아미라니의 전설을 품은 거대한 카프카스의 위엄, '일리아드'를 능가하는 장편 서사시 '샤 나메'에 담긴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3부는 우즈베키스탄과 중국을 지나 백두산에 이르는 여정을 담고 있다. 황제와 인드라, 천문과 욥기, 하누만과 손오공 등을 비교하며 민족주의와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자고 말한다.
4부는 델리를 거쳐 인도에 이르는 여정이다. 인도인의 삶을 장악한 카스트의 실상을 깊숙이 들여다본다. 지은이 공원국은 서울대 동양사학과와 서울대 국제대학원을 졸업했고, 중국사와 관련한 다수의 책을 썼다.
458쪽, 1만8천원.
조두진 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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