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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동의 유럽 미술관 기행] ①'바젤리츠와 그의 세대전'을 연 대영박물관

바젤리츠의 영웅 시리즈
바젤리츠의 영웅 시리즈 'A New Type'
분단 독일의 화가들을 주제로 한 전시 포스터.
분단 독일의 화가들을 주제로 한 전시 포스터.
설치 작품
설치 작품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약'. 3명의 작가가 참여해 오늘날 영국 사람들이 건강 문제를 대하는 여러 태도를 추적해 만든 작품이다.
필자 김영동은… 영남대 미학미술사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한국예술문화비평가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는
필자 김영동은… 영남대 미학미술사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한국예술문화비평가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는 '근대의 아틀리에'(한티재, 2011)가 있다. 또 2005년 광복 60주년 기념 '희망대구 평화한국전'(국립대구박물관 기획전시실)과 2009년 '대구근대미술전'(대구문화예술회관) 책임큐레이터를 맡았으며 대구문화재단 '영상예술의 도시-대구전'의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세계 미술은 빠르게 흐르고 있다. 특히 현대 미술은 변화 속도가 변화무쌍해 전문가들도 그 속도를 쉽게 따라잡기 힘들 정도다. 미술관이 늘어나면서 각종 전시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추세에 맞춰 세계 미술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최근 유럽 미술관을 둘러보고 온 김영동 미술평론가를 통해 선진 미술관들의 전시에서 나타난 특징들을 살펴보고 이들 미술관들이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지, 어떤 고민을 담아내려고 하는지 등을 조명한다.

▷독일분단의 틈새서 탄생한 '바젤리츠와 그의 세대전'을 연 대영박물관

지난해 '대영박물관' 입장객 수는 670여만 명으로 개관(1759년) 이래 최고 기록을 세웠다. 방대한 규모의 전시 공간과 그 안에 소장된 유물의 양, 그리고 각종 프로그램과 기획전을 운영하는 조직적인 모습을 보면 감탄을 금치 못한다. 홈페이지를 통해 거의 모든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체계까지 갖춘 것은 더욱 놀랍다. 게다가 이 매머드급 미술관이 최근 독일 현대미술을 테마로 한 전시까지 열어 앞으로 보여줄 변화와 다양성이 어디까지인지 가늠을 못할 정도다.

예전에 이미 고대 이집트의 부부 조각상(기원전 1300년경)을 테이트모던에서 빌려온 헨리 무어의 '왕과 왕비'(1952~3년)상과 나란히 전시한 적이 있었다. 고대와 현대의 조우를 연출해 강렬한 대비와 묘한 조화를 느끼게 한 그런 배치의 아이디어는 분명히 관객들에게 경이로운 경험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많은 관람객들은 보통 파르테논 유적과 고대 이집트, 그리고 로제타스톤 같은 고'중세의 이름난 유물을 보러 이곳에 오지만 전시 곳곳에서 모던 아트나 동시대미술에 대한 관심도 발견할 수 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삶과 죽음'이라는 제목의 특별전에서도 현대인들이 사용하는 알약들을 모아 끝없이 진열해 놓은 설치 작품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약'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마치 거대한 과거 유물 창고 안에서 살아있는 생명의 예술을 이야기하는 것이 미술관 본래의 취지임을 말하는 듯했다.

장르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다양성을 추구하려는 미술관의 노력은 새로운 컬렉션과 기획전 방향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최근 막을 내린 '분단 독일: 바젤리츠와 그의 세대'는 1990년 통일을 이루기 전, 서독에 있는 동독 출신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세계를 조명한 전시로 동독 출신 작가들이 문화와 환경의 차이에서 온 혼란과 그 분열의 틈새서 겪은 갈등과 고통을 드러낸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런 현대적 주제의 전시가 테이트모던이나 내셔널갤러리 등 미술관을 제쳐 두고 이곳에서 열린 것이 다소 의외였다. 하지만 그래픽실에 미켈란젤로의 소묘와 알브레히트 뒤러의 역사적인 판화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전시를 통해 르네상스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한 장르의 컬렉션을 갖추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전시된 작품 수는 90여 점으로 바젤리츠, 펜크, 폴케, 뤼페르츠, 팔레르모, 리히트 등 여섯 작가의 드로잉과 판화가 주종을 이뤘다. 국경이 봉쇄된 1967년 이전에 서독으로 이주한 작가들이 대부분이지만 추상미술이 지배하던 1960, 70년대 당시, 서독 화단에서 사회주의 국가로부터 온 작가들이 어떻게 양식적인 충격을 극복하는지 역추정해 볼 수 있는 매력적인 전시였다. 이들 중에서 소위 1980년대 독일 신표현주의자가 나오고 네오 다다나 네오 팝아트 계열로 나아간 작가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 전시가 독일의 부유한 실업가의 기증에서 비롯되었다는 점도 특기할만한 사실이다. 쾰른에서 제약회사를 경영해 큰돈을 벌었다는 뒤르크하임의 개인 컬렉션에서 빌려오고 그중 34점은 소장자가 대영박물관에 기증했다. 이 컬렉터 역시 동독에서 이주한 사람으로 바젤리츠와 고향이 가까워 일찍이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바젤리츠의 중요한 초기 작품들을 빠짐없이 모았고 이번 전시의 핵심적인 내용이 되었다. 위아래가 거꾸로 된 그림을 그리는 바젤리츠가 4단계의 변화를 거쳐 현재에 이르게 된 과정을 잘 보여줌으로써 분절되고 혼란스러운 이미지와 지금의 전도된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일반적으로 선사미술과 고대유물의 보고로 알려진 대영박물관이지만 모던아트와 컨템퍼러리아트까지 경계 없이 수용하는 모습을 새로운 기획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필자 소개

영남대 미학미술사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한국예술문화비평가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는 '근대의 아틀리에'(한티재, 2011)가 있다. 또 2005년 광복 60주년 기념 '희망대구 평화한국전'(국립대구박물관 기획전시실)과 2009년 '대구근대미술전'(대구문화예술회관) 책임큐레이터를 맡았으며 대구문화재단 '영상예술의 도시-대구전'의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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