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느리게 읽기] 1%가 만들어 놓은 유혹에 스스로 걸려들 것인가?

사람의 거짓말 말의 거짓말/ 남재일 지음/ 천년의상상 펴냄

'1%의 부자가 99%를 지배한다.' 뒤집어 읽어보자. '1%의 부자가 99%를 먹여 살린다.'정치적 지향이 다른 두 말은 그러나 1%가 99%를 좌지우지한다는 현실 인식은 같다. 그렇다면 틀을 조금 벗어나 생각해보자. 99%는 왜 1%에 의해 울거나 웃는 삶을 살아야 할까. 그들과 헤어져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건 어떨까.

쉽지 않은 일이다. 1%는 99%를 지배하기 위해 99%가 1%를 욕망하도록 유혹하고, 번번이 그 욕망을 좌절시키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백화점 진열장의 명품백은 가난한 여대생에게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서너 개 하면 나를 가질 수 있다. 나를 가지면 당신도 대접받을 수 있다"며 손짓하고, 고급 외제차 광고에 등장하는 팔등신 미녀는 "이 차를 사면 당신도 나랑 잘 수 있다"고 속삭인다. 이러한 유혹의 메시지에 감염된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물질적 성취와 소비로만 상상할 줄 안다. 그러다 보니 자본의 유혹을 자신의 신념으로 복제한 말과 행동이 일상을 가득 채운다. 이러한 말과 행동은 서로 소통되지 못하고 독백으로 버려진다. 1%를 향한 욕망은 불통의 시대도 만들고 있다.

저자인 남재일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1% 지배 체제가 설정한 유혹의 메시지를 '말의 거짓말'로, 유혹된 개인들의 위선과 기만을 '사람의 거짓말'로 명명했다. 그리고 두 거짓말이 서로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분석한다. 1%의 유혹과 99%의 순응이 맞장구치는 시대라는 얘기다. 저자는 "유혹의 정치는 신자유주의 헤게모니 유지를 위한 문화적 전략이다. 궁극적으로는 '지배 없는 착취'다. 정치적 통제나 기업적 관리 같은 지배의 비용조차 필요 없는, 가장 경제적인 통제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저자는 순응, 동의, 묵인하는 99%의 손에 문제 해결의 열쇠가 있다고 본다. 유혹된 개인들이 위선과 기만의 가면을 벗고, 반(反)유혹의 삶을 실천하는 것이 시작이다. 앞서 저자는 산문집 '그러나 개인은 진화한다'에서 사회적 압력에 상처받지만 동시에 그 압력과 환부를 끌어안고 싸움으로써 온전히 재탄생하는 개인을 주목한 바 있다. 이번에도 개인들에게 거부의 시작을 강조한다. 만약 다른 삶의 방식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면.

책은 개인과 사회, 정치와 윤리, 언어의 이데올로기적 쓰임 등에 대해 다루며 지금 한국 사회의 환부를 명징하고 적확하게 분석한다. 저자는 중앙일보 기자, 한국언론재단 연구위원,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등을 지냈다. 지난해 매일신문 문화칼럼 필진으로 독자들과 만났다. 315쪽, 1만8천원.

황희진 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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