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마, 보고 싶어요] 2살 때 미국으로 입양 오인덕 씨

1984년 백합보육원 맡겨져…부모님이 죄책감 느끼지 말았으면

입양 당시 오인덕 씨.(사진 좌측). 현재의 오인덕 씨
입양 당시 오인덕 씨.(사진 좌측). 현재의 오인덕 씨

30년 전 미국으로 입양 간 뒤 여태껏 한국 땅을 밟아 본 적이 없는 오인덕(미국 이름 레베카 케이'32) 씨는 최근 백합보육원을 통해 가족을 찾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1984년 5월 2일 오후 9시쯤 대구역 대합실에서 한 여성이 화장실에 가는 동안 잠시만 봐달라며 오 씨를 지나가던 시민 김재욱(당시 36세) 씨에게 맡겼다. 한참을 기다린 김 씨는 화장실과 대합실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그를 찾을 수 없었다. 김 씨는 대구역 인근에 있는 역전 파출소에 이 같은 사실을 신고했고 그날 밤 오 씨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가 운영하는 백합보육원으로 가게 됐다. 오 씨의 이름과 생년월일은 당시 보육원에서 지어준 것이다.

오 씨는 그해 11월 6일 서울 홀트아동복지회로 가 2주 뒤 미국 미시간주의 한 가정에 입양됐다.

양부모와 다섯 살 많은 오빠는 오 씨를 무척이나 예뻐했다. 동네에 거주하는 아시아인이 거의 없어 소외감을 느낄까 봐 늘 관심과 사랑을 줬다. 밝은 가족 분위기 덕분에 구김살 없이 자란 오 씨의 주위엔 늘 친구가 많았고 공부뿐만 아니라 발레, 피아노 등 여러 방면에서 재능을 보였다.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는 오 씨였지만 입양인으로서 느끼게 되는 소외감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았다.

"친구들과 웃고 떠들다가도 가족과 닮은 외모, 성격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그 순간 무기력하고 외로워지는 기분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오 씨는 2년 전 가족을 찾고 싶은 마음에 미국에서 직접 홀트아동복지회로 연락해 자신이 발견된 장소, 사연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친부모를 찾는 한국계 입양아들이 극히 소수라는 사실도 알게 돼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 시간은 오 씨의 삶에 큰 변화를 줬다.

오 씨는 "국적은 미국이지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도 갖춰가는 느낌이다. 주위에서도 예전보다 심적으로 더욱 안정되고 성숙해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했다.

현재 보스턴의 한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오 씨는 직장 일정이 허락되는 대로 한국에 와 자신이 2년간 살았던 곳을 돌아볼 예정이다.

"혹시라도 부모님이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면 전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감사할 것이 많은 삶을 살아왔으니 저 때문에 힘들어했을 부모님을 오히려 위로해 드리고 싶습니다."

연락처: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대구관구 053)659-3333.

허현정 기자 hhj224@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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