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양극화 해소, 공동체가 답이다] (3)요리로 노숙인 자활 돕는 레스토랑

소외된 사람 모아 7개월 요리 교육…60여 명 인생 2막 열어

브리게이드(Brigade) 레스토랑 주방에서 여성 종업원들이 주문을 확인하고 있다.
브리게이드(Brigade) 레스토랑 주방에서 여성 종업원들이 주문을 확인하고 있다.
브리게이드 레스토랑 전경.
브리게이드 레스토랑 전경. '파이어 브리게이드 스테이션'은 영어로 소방서를 뜻한다.
"졸업 사진이에요!" 브리게이드 레스토랑 매니저가 요리 학교를 수료한 사람들의 사진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영국 런던 브리지에서 걸어서 10분. 툴리가(Tooley Street)로 들어서면 '파이어 브리게이드 스테이션'(Fire Brigade Station)이라고 적힌 빨간 벽돌 건물이 서 있다. 영어로 소방서를 뜻하는 이곳은 레스토랑 '브리게이드'(Brigade)다. 소방서에서 이름을 딴 브리게이드는 노숙인과 전과자 등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자활을 돕는 사회적 기업이다.

◆음식에 '자활' 희망을 담다

점심 시간에 맞춰 도착한 브리게이드. 붉은색 의자와 조리 과정을 볼 수 있는 개방형 주방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브리게이드가 이 자리에 문을 연 것은 3년 전이다. 이 레스토랑은 설립자이자 수석 셰프인 사이먼 보일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2006년 스리랑카 쓰나미 피해 현장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그는 집 잃은 사람들을 도우며 새 비전을 찾았다. 음식을 향한 그의 열정을 활용해 노숙인을 돕는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결심했고, 영국에 돌아와 바로 실천에 옮겼다. 사이먼은 먼저 '비욘드 푸드 파운데이션'(BFF:Beyond Food Foundation)을 설립했다. 노숙 위험에 처했거나 거리의 삶을 경험했던 사람들에게 요리 견습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를 주는 사회적기업으로, 기초 조리법부터 손님 응대까지 꼼꼼하게 가르치는 '요리 학교'다. BFF는 요리라는 '기술'을 가르쳤다. 노숙인들이 사회로 나가 제대로 된 직장을 찾도록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설립 취지에 공감한 단체 후원도 뒤따랐다. 국제 회계 감사 기업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 쿠퍼스'(Pricewater house Coopers)를 비롯해 구청도 BFF를 지원했다.

레스토랑 장소에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았다. 소방서가 시민의 안전을 지키듯, 이들도 음식을 매개로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1879년 이 자리에 세워진 툴리 소방서는 1861년 6월 발생한 '툴리가 화재' 때문에 생겼다. 이 화재는 런던 대화재 이후 최악의 화재로 불리며 화재 진압에만 2주가 걸렸다. 이 화재 이후 시민들의 생명과 자산을 보호하려고 도심 소방서가 곳곳에 설치됐으며, 툴리 소방서도 이 중 하나였다.

◆촘촘한 시스템 노숙인 '셰프' 만든다

BFF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훈련생을 모으는 것이었다. 활동가들은 노숙인들이 사는 임시 합숙소를 돌아다니며 요리 학교의 취지를 설명했다. BFF 지원 매니저인 젠 세이모어 씨는 "120~140명을 만나면 요리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절반도 안 됐다. 이들을 설득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며 "거리 생활과 자유에 익숙해진 노숙인들은 훈련을 받다가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 애를 많이 먹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활동가들은 끈질겼다. 세이모어 씨는 "우리는 오랫동안 일을 쉬었던 노숙인들을 훈련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중도 탈락자들이 거리로 나가면 계속 다시 찾아가서 만나고, 설득했다. 중도 탈락률은 48~49%로 훈련생 절반 이상은 끝까지 남는다"고 덧붙였다.

BFF의 요리 학교는 7개월 2주 과정이다. 6주간 기본 교육을 받고, 6개월간 레스토랑 주방에서 현장 실습을 한다. 이 모든 과정을 무사히 마쳐야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1년에 두 번 모집 과정을 거쳐 총 16명을 가르치고, 지금까지 수료생 60여 명을 배출했다. BFF 관계자는 "수료생 중 브리게이드에 남는 사람도 있고, 다른 레스토랑에 취업한 사람도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후 관리다. 레스토랑을 떠난 사람들도 다른 직장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꾸준히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브리게이드의 2층은 '모임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와인 라운지와 주방, 널찍한 회의실 등이 갖춰져 있어 와인 클럽과 퀴즈 클럽 등 다양한 사교 모임도 열린다. 2층에서 눈에 띈 것은 검은 앞치마를 맨 사람들의 사진이었다. 2층을 안내한 레스토랑 매니저는 "요리 학교를 수료한 사람들의 졸업 사진 같은 것"이라며 액자를 가리켰다.

아무리 착한 일을 하는 레스토랑이라도 음식 맛이 없으면 손님이 찾지 않는다. 이날 기자는 점심 세트를 주문했다. 염소 치즈가 들어간 샐러드, 치킨 스테이크, 디저트가 차례로 나왔다. 맛있었다. 함께 음식을 먹은 사람들도 "피시앤칩스(영국식 생선 튀김)보다 훨씬 낫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점심 세트 가격은 17파운드(약 3만원) 정도로 살인적인 런던 물가를 고려하면 합리적인 편이다. 음식 맛을 무기로 브리게이드는 상당한 수익을 내고 있다. 1년 평균 매출은 250만파운드, 우리 돈으로 약 43억원이다. 세이모어 씨는 "앞으로 더 많은 노숙인과 전과자들에게 요리를 배울 기회를 제공하고,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끝까지 돕는 것이 브리게이드의 목표"라고 밝혔다.

영국 런던에서 글 사진 황수영 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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