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토호세력의 종말

'이번에는 지방 토호(土豪)세력을 척결하겠다.'

과거 시국이 어수선해지면 내무부'법무부장관이 기자회견장에 나와 각종 사회악을 뿌리뽑겠다고 엄포를 놓곤 했다. 그때마다 '토호세력 척결'은 '민생침해사범 엄벌' '조직폭력배 일소'와 함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고정 레퍼토리였다. 토호는 향촌에 자리 잡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사적 이익을 챙기는 지배계층을 의미한다. 그런데 사법당국이 그렇게 오랫동안 '토호세력 척결'을 외쳤는데도, 아직도 그런 사람들이 버젓이 설치고 다니는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대구의 유력인사 A씨가 횡령, 배임 등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고 한다.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의 돈을 불법적인 방법으로 빼돌렸다가 내부 직원의 고발로 적발됐다. A씨는 과거에도 비슷한 전력을 갖고 있어 그리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이런 짓을 하면서도 유력인사로 대접받고 있었다는 자체가 놀랄 일이다. 어디 대구뿐이랴. 포항, 경주 등에도 이런 토호들이 있다. B씨는 기업 운영, 집안 문제, 도박 등으로 온갖 구설에 올라 있다. 이런 토호들은 자신이 운영하는 언론이나 기업을 앞세워 사회적인 지위를 높이고 보호막을 만들곤 하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그 실체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지역사정에 밝은 사람이라면 평소에도 이들 토호가 저지르는 크고 작은 말썽을 전해듣고, 혀를 차곤 했다.

흥미롭게도, 이런 토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이들은 부동산, 관(官)에 대한 로비와 특혜 등 편법적인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다는 점이다. 생산활동에 기여한 바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천박한 자본'의 전형이다. 둘째,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게는 한없이 관대하지만, 남에게는 아주 가혹하다. 직원들에게는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쥐꼬리만한 월급을 주면서 마구 부려 먹고 심지어 월급을 체납하는 경우도 있다. 활용가치가 없어지면 단숨에 잘라버리는 것은 물론이다. 직원을 인간답게 대하지 않기에 끊임없이 내부고발자가 생겨나는 것이다. 셋째,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있지만, 자신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점이다.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면서 권위의식과 특권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한다.

아직도 이런 사람들이 어깨에 힘주고 행세하고 있으니 우리 사회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말해준다. 돈으로는 절대 권위나 명예를 살 수 없다. 도덕성을 겸비하지 않으면 세상의 손가락질만 받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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