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구와 비(非)수성구. 대구를 나누는 잣대 중 하나다. 구분 기준은 교육, 더 엄밀히 말하면 고교 학력이다. 수성구에 자리한 고교와 나머지 지역 고교 간 학력 격차가 적지 않은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자녀의 고교 진학 문제 때문에 수성구로 이사하는 것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학력 격차가 예전보다 줄었다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수성구로 향하는 발걸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현대판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의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는 데서 나온 말)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이 같은 현상이 지역 균형 발전에 걸림돌이라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실제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바탕으로 수성구와 비수성구 사이에 학력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그 같은 현상을 완화할 방법은 없는지 살펴봤다.
◆수성구와 비수성구, 여전한 학력 격차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을 둔 A(43'대구시 북구) 씨는 하반기 중 수성구로 이사할 생각을 갖고 있다. 아들이 '괜찮은 대학'에 진학하려면 수성구 중'고교를 거치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다.
"교육 관련 정보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면 칠곡 지역 고교에 기대할 게 없다고들 말합니다. 공부할 분위기도 수성구 쪽이 훨씬 좋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빨리 학교를 옮기는 게 좋다고 봐요."
B(50) 씨는 좀 더 일찍 수성구로 이사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현재 고3인 딸이 중학교 2학년일 때 달서구에서 수성구로 이사했는데 딸이 좀처럼 학교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
"이전 중학교에선 전교에서도 상위권인 아이가 수성구에 오니 학급에서 중위권이 되더군요. 다른 아이들이 보는 책의 수준이 높은 데다 경쟁적인 분위기 탓에 주눅이 든 뒤부턴 좀처럼 따라잡지 못했어요. 초등학교 때 이사했더라면 좀 더 적응하기 쉬웠을 텐데 많이 아쉽죠."
수성구는 서울 강남'서초구, 부산 해운대구 등과 더불어 이른바 '교육 특구'로 불린다. 대구, 특히 수성구의 수능시험 성적은 아직 상당히 좋은 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수성구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변화하는 대학입시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어서다.
최근 대학입시는 정시모집에서 수시모집, 수시모집 중에서도 학생부 종합전형에 무게 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이에 따라 수능시험 성적이 우수하다는 게 곧 진학 실적이 좋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수성구가 수시 대비에 약한 것은 사실. 수성구 고교 진학 담당 교사들도 수성구의 진학 실적이 예전만 못하다고들 토로한다. 하지만 인천, 부산 등 경쟁 도시와 비교했을 때 그럴 뿐이지 대구 내부로 눈을 돌리면 사정은 예전과 마찬가지다. 수능시험은 물론 수시 대비도 비수성구가 수성구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수성구와 비수성구의 학력 격차를 가장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는 수능시험 성적이다. 새누리당 윤재옥 의원실로부터 받은 '2014학년도 수능시험 분석 자료'를 매일신문 교육문화센터가 분석, 상위권인 1'2등급 비율을 살펴보니 수성구와 비수성구의 격차가 여실히 드러났다.(표 참조)
국어, 수학, 영어 등 세 과목의 1'2등급 비율 평균을 비교했을 때 상위 30위 고교 안에 수성구 고교가 13개교나 됐다. 영재학교인 대구과학고와 자율형 사립고인 경신고를 뺀다 해도 11개교. 달서구는 특수목적고인 대구외고와 자율형 사립고인 대건고를 제외하면 6개교에 그친다. 남구와 중구는 각각 자율형 사립고인 경일여고와 계성고를 빼면 1곳씩뿐이다. 북구 역시 경상여고 1곳에 불과하고 서구는 아예 없었다. 특수목적고인 대구일과학고를 제외하면 동구 고교 중 30위 안에 든 곳도 없었다.
그렇다고 비수성구 지역이 수시 대비를 잘했다고 하기도 어렵다. 대구의 2014학년도 서울대 수시모집 최초 합격자 수는 118명. 서울(981명), 경기(461명), 부산(149명), 인천(127명), 경남(121명)에 이어 6위다. 대구 합격자 가운데 72명이 수성구 고교 출신이다.
◆학력의 수성구 쏠림 현상, 완화할 방법은
대구시진학지도협의회 김장중 회장(경원고 교사)이 꼽은 학력 격차의 원인은 비수성구 학교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부정적 인식이 잘 바뀌지 않는 데다 학업 여건과 경제적 수준도 수성구보다 뒤지는 것. 그는 "시교육청은 학생 배정과 학교 재정 지원 방안에 대해 좀 더 연구할 필요가 있다"며 "지방자치단체도 학생들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학교 주변 환경을 정비하고 학교 지원 사업도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교사들 가운데 일부는 교사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달서구 한 중학교 교사는 "교육 환경이 열악한 곳으로 발령나면 다양한 이유를 대면서 휴직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결국 그런 곳에 자리한 학교는 경험이 적은 교사나 기간제 교사로 빈자리를 채우는데 그 학교들이 얼마나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느냐"고 했다.
달서구 한 고교 교사는 교사들이 좀 더 교육과정과 대학입시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앞으로 고교에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이 도입되면 대입에서 수능시험이 더욱 쉬워져 자격고사화하고 학생부, 면접 등 다른 전형 요소가 더 강조될 가능성이 크다"며 "그럼에도 수능시험 방식이 좀 바뀐다 해서 바로 대입이 다시 수능시험 위주로 흘러갈 것이라고 말하는 주변 교사들을 보면 어이가 없다"고 한탄했다.
대구시의회 윤석준 교육위원회 위원장은 학력 격차를 줄이기 위해 고교 입학전형 과정에서 단일학군제를 전면 도입하자고 했다. 중구, 동구, 북구, 수성구, 달성군 가창면은 1학군이고 서구, 남구, 달서구, 달성군(가창면 제외), 고령군 다산면은 2학군에 해당한다.
윤 위원장은 "대입과 직결되는 고교 입학전형에 손을 대 학군 구분을 완전히 없앨 필요가 있다"며 "수성구의 중'상위권 학생들이 비수성구로 쉽게 갈 수 있게 되면 점차 비수성구의 학력도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구시교육청 김사철 교육국장은 공립 일반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지정한 자율형 공립고가 학력 격차를 줄이는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구의 자율형 공립고는 포산고, 강동고, 경북여고, 구암고, 달성고, 대구고, 대진고, 상인고, 서부고, 수성고, 칠성고, 학남고, 호산고 등 13개교. 이 중 수성고 외에는 모두 비수성구 지역 고교다.
김 국장은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을 확대, 좀 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게 하고 재정 지원도 강화했는데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며 "이들 자율형 공립고가 내실 있게 운영돼 고교별 특색이 드러나게 된다면 다른 고교들에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비수성구 고교들이 수능시험 성적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어차피 대입에서 대세는 수능시험 위주인 정시모집이 아니라 수시모집, 특히 학생부 종합전형이기 때문이다.
대건고 이대희 교사는 "결국에는 비수성구의 진학 실적이 좋아야 수성구 선호 현상이 숙진다. 현재 비수성구 고교들은 수능시험 성적뿐 아니라 진학 실적도 수성구 고교에 비해 떨어진다는 게 문제"라며 "지자체와 함께 학생부 종합전형에 대비해 학술 동아리, 독서, 진로 맞춤형 특강과 체험활동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비수성구 고교의 위상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채정민 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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