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 간 아들에게서 소포가 왔다. 편지와 사물(私物)이다. '대한민국 국방부'라 인쇄된 편지지에는 이번 주말 훈련 기간을 마치면 자대 배치가 있을 거라고 쓰여 있다. 나는 편지에 코를 박고 두 번, 세 번 되풀이 읽었다. 배고프지는 않았는지, 훈련이 힘들지는 않았는지 탐색견처럼 행간을 살피며 냄새를 맡았다. 사물은 입대할 때 입고 간 옷과 운동화였다. 손을 댄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아들 방의 문을 열었다. 침대와 책상이 그대로 있었다. 훈련 기간 동안 나는 줄곧 아들 침대에서 잠을 잤다. 아들 컴퓨터를 두드려 보기도 하고 아들 책장에서 책을 꺼내 뒤적여 보기도 했다. 오늘은 MP3를 귀에 꽂아 보았다. '대니 보이'가 흘러나왔다. 입대하기 전 듣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알토 색소폰에 가슴이 울컥했다.
'대니 보이'는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되찾기 위해 집을 떠나는 아일랜드 젊은이들의 노래이다. 아일랜드는 무려 800년 동안이나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대니 보이'의 구슬픈 가락에는 집 떠나는 아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슬픔이 짙게 배어 있다. 우리나라의 '아리랑'처럼 민요가 되어버린 '대니 보이'. 오랜 식민 통치로 모국어조차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 영어로 부르게 된 '대니 보이'. 세월이 흘러 아일랜드는 결국 독립했지만 '대니 보이'가 처음 나온 북아일랜드의 데리는 아직 영국령이다.
'저 목장에는 여름철이 가고/ 산골짝마다 눈이 덮여도
나 항상 오래 여기 살리라/ 오, 대니 보이 오, 대니 보이 내 사랑아'
나는 '대니 보이'를 듣고 또 들었다. 집 떠날 때 아들의 모습이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러다 문득 MP3를 귀에서 뽑았다. 책꽂이 속에서 버려진 사과 꼭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들의 나쁜 습관이었다. 게으른데다 산만하고 정리정돈에 등한했다. 신체검사 결과가 1급으로 나와 현역으로 간다고 했을 때 속으로 은근히 반기지 않았던가.
'대니 보이'는 무슨. 지금이 식민지 시대도 아니고.
나는 말라비틀어진 사과 꼭지를 치우고 소포로 보내온 옷을 세탁기에 넣었다. 흙 묻은 운동화를 대야에 담고 비누솔로 북북 문질러 빨다 보니 다시 그 슬픈 멜로디가 가슴에 차올랐다. 대니 보이, 내 사랑.
소진/에세이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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