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실, 박중훈이 신혼부부를 연기한 이명세 감독의 1990년도 작품을 '효자동 이발사'(2004) 임찬상 감독이 리메이크했다. 당시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연기 경력이 일천했던 최진실을 일약 국민 신부로 올려놓았고, 박중훈은 코믹 연기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이명세 감독은 인공적인 세트 안에서 펼쳐지는 수채화 같은 사랑 이야기를 통해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주며 한국 영화의 새로운 기대주로 자리를 확고히 했다. 이 영화 이후 한국 영화계에 로맨틱코미디 유행이 일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내 마음의 영화로 기억하는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24년 만에 새로운 얼굴들과 함께 만난다.
2014년 현재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인물들의 직업이 바뀌고 소품은 디지털 시대에 맞게 등장한다. 상황과 사건도 조금씩 달라졌다. 하지만 사랑해서 결혼한 이들이 서로에게 점차 소홀해지고, 오해하고, 위기를 겪게 되고, 그러다가 다시 극복하고, 회복하는 커다란 틀은 그대로 가져간다.
9급 공무원 영민(조정석)은 4년간 연애한 미술학원 강사 미영(신민아)에게 프러포즈한다. 마냥 행복할 줄만 알았던 달콤한 신혼생활도 잠시, 사소한 오해와 마찰이 생기며 둘의 애정전선에는 이상기후가 감지된다. 영민의 눈에 돌싱녀가 된 동창생 승희(윤정희)가 들어오고, 미영은 뮤지컬 감독으로 성공한 첫사랑 때문에 마음이 설렌다. 말이 안 통하는 철부지 남편과 잔소리가 늘어가는 아내가 되어버린 두 사람은 각자 이 결혼이 잘된 것인가에 대해 질문한다.
영화는 장을 몇 개로 분절하여 남편과 아내 각자의 시선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을 담고 있으며, 자꾸만 생겨나는 오해를 각자가 어떻게 왜곡하여 받아들이는지를 코믹하게 표현한다. 엇나가며 갈등을 일으키는 이들에게 커다랗게 다가오는 충격들이 관객에게는 소꿉장난처럼 아기자기하게 보인다.
결혼을 하면서 생긴 아내와 남편이라는 위치는 버겁기만 하다. 행복하기 위해 결혼했지만 너무 다른 습관으로 익숙해진 서로가 함께 살아가기란 힘겨운 일이어서 이들은 자꾸 시선을 외부로 돌린다. 시인이 되고픈 영민과 화가가 되고픈 미영은 자신의 꿈을 포기할 수 없다. 오해하고, 갈등하고, 그러다 폭발하지만, 이내 이들은 다시 돌아오게 된다. 이들을 단단하게 이어주는 사랑 때문이다.
영화는 결혼한 이들에게는 추억을 되살리게 하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자들에게는 사랑과 결혼의 현실적인 무게를 미리 체험하게 한다. 신혼부부를 둘러싼 개성적인 인물들의 좌충우돌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으며, 고즈넉한 삼청동 옛길은 노스탤지어에 잠기게 한다. 여기에 현대 젊은이들의 연애 방정식이 녹아있다. 하지만 로맨틱코미디에서 무엇보다 필수요건은 인물들의 매력. 조정석은 유연한 생활연기를 보여주고 신민아는 상큼하고 예쁘다. 오지랖에 지질한 라미란, 배성우 등의 감초 연기가 웃음 포인트를 주며, 노시인으로 등장하는 문여송은 감동과 눈물 담당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해서일까. 당시 신선한 충격을 던져준 원작의 인상을 넘어서기에는 버겁다. 세월이 흘렀건만, 아내의 역할은 꿈을 위해 매진하는 남편을 돕는 역할로 한정되어 있다. 도발적이고 거침없이 욕망을 드러내는 남편에 비해 아내는 착하고 순종적이다. 여자가 자신을 더 사랑해주고, 관심을 가져달라고 투정 부리며 기다리는 보수적인 남녀관은 영화를 심심하게 만들어버렸다.
일상이 가장 아름답고 귀하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보수적인 가치관 안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변해버린 풍속도를 반영하여 24년 후의 달라진 남녀관을 보여주었더라면 리메이크로서의 창조적인 효과가 살아났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하지만 영화의 귀엽고 아기자기한 매력은 여전하다. 거칠고 잔인한 영화들의 홍수 속에서 한 줄기 맑은 수채화처럼, 청량한 레모네이드처럼 영화는 가볍게 즐기기에 충분하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최진실이 깜찍하기만 한 스타가 아니라 생활연기의 달인이었음을 그때는 몰랐다. 다시 한 번 훌륭한 배우로서의 그녀의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 영화 크레디트에 '고 최진실을 기리며'라는 한마디 문구 때문에 울컥했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