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들에게
아들아! 네가 떠난지 벌써 1년이 되었구나. 남은 사람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떠나려니 그렇게도 쉽게 가버리는구나.
무정한 아들! 무정한 시간들!
너를 산에 묻고 돌아와 초우제를 지내고나자마자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천둥이 치고 좍좍 소나기가 퍼부었지. 너의 눈물 같아 그냥 나도 따라 울었다.
그리고 삼우제 지내고 혼백을 안고 산으로 가려고 집을 나서는데 또 한 번 너는 울었지. 가랑비가 되어….
서른두 해 동안 몸 담았던 집을 떠나는데 어찌 눈물이 없을 수가 있었겠니. 모든 일에 있어 항상 같이 머리 맞대 의논하고 이 어미에게 많은 의지를 했던 너였는데 한 번 가버리니 너무도 매정하구나. 어찌 한번 꿈 속에도 나타나는 법이 없네. 생전에 넌 외할머니를 무척 좋아했었는데 그렇게 좋아하던 외할머니 만나 엄마는 잊어버렸니?
아들아!
독자인 너의 아빠에게 시집와서 네 증조할머니, 할머니의 남아선호사상이 골수에 박힌 분을 모시고, 먼저 누나부터 낳고 그 구박은 말로 이루 할 수가 없었단다. 일례(一例)로 너를 가졌을 때 네 할머니가 어느날 출처도 불분명한 곳에서 이상한 약을 지어 와서 " 자, 아들 낳는 약이다. 이것 다 먹으면 딸도 아들로 바꾼단다. 지금부터 달여 먹어라." 너무 기가 막히고, 특히 임신 중에는 함부로 약을 먹어서는 안되므로 먹지 않았더니 "아들 못 낳으면 두고보자, 가만 있지 않을 거다" 벼르시던 네 할머니.
그런 환경에서 너의 탄생은 그야말로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축복이었다. 그렇게 너는 내게로 와서 많은 기쁨과 놀람, 슬픔, 분노들을 주고 너무 쉽게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가 버렸구나. 아흔을 바라보는 할머니도 뒤로 하고 뭐가 그리 급해 서른 둘 꽃다운 나이에 맘껏 한 번 활짝 펴보지도 못하고 가버렸니?
1주기를 맞았지만 도무지 이 세상에 네가 없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아. 군대 갔을 때처럼, 어학연수 갔을 때처럼, 어느 순간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며 "엄마, 나 왔어예" 할 것만 같아 하루에도 몇 번씩 현관문을 바라다본다. 부질없는 일인줄 알면서도….
네가 병원에서 태어났을 때 병원에서 준 나팔꽃이 새겨진 스테인리스 숟가락(성장한 후 줄곧 썼던 아들 숟가락)은 그대로 있는데 왜 너는 이 세상에 없는지?
나는 이 세상에 와서 이제 내가 할 일은 어지간히 한 것 같아. 지금 가도 그리 애닯아 알 것도 없는데 이렇게 멀쩡히 살아 숨쉬는데 왜 너는 너의 꿈 한번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그리 일찍 가버렸니?
"엄마! 나중에 내가 커서 돈 많이 벌어 마당 넓은 주택 사서 엄마 모시고 강아지 키우며 살아요. 나는 아파트보다 주택이 좋거든요." " 엄마! 엄마는 과일 중에 복숭아를 제일 좋아하니까 나중에 엄마 돌아가셔서 제사 지낼 때 복숭아도올려드릴게요" 하던 너의 말들이 아직 귀에 쟁쟁하다.
길을 가다 안경 끼고 검은 모자에 검은색 혹은 회색 티셔츠나 바지 입은 키가 훌쩍 큰 젊은 남자만 보면 홀린 것처럼 너라고 반가이 쫓아갔다가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상대를 보고는 깜짝 놀라 돌아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란다.
예전에 故 박완서 님의아들 잃은 어미의 참척의 마음으로 쓰신 글을 읽으며 "많이 슬프셨겠다. 얼마나 가슴이 아프실까?" 그냥 머리로만 생각하며 무심히 책장을 넘겨버렸는데 최근에 다시 그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동병상련이랄까. 아무리 주위에서 '네 마음 안다, 이해한다'지만 직접 같은 일을 겪지 않으면 도저히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철저히 깨달았다. 몇 페이지 안 되는 글이었지만 며칠을 두고 울면서 다시 읽었다.
너를 보내고 처음엔 밤을 하얗게 꼬박 지새도 잠을 잤는지 안 잤는지, 잠도 오지 않았고 음식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픈 줄도 몰랐고, 밖에 나가면 다른 사람들이 " 저 여자, 자식 먼저 보내고도 저렇게 뻔뻔하게 얼굴 들고 나다닌다"며 손가락질하고 욕할 것 같아 두문불출하고, 또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는 왜 그리도 무서운지, 벨 울릴 때마다 깜짝 깜짝 어린 아이 경기하듯 놀랐다. 그래서 아빠가 집 전화 끊어버렸지. 누가 위로 겸 해서 찾아온다 하면 아빠랑 차를 타고 마치 큰 죄를 지은 죄인 마냥 멀리 나갔다 돌아오고, 도저히 사람들 앞에 나설 자신이 없어 숨죽이고 살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래도 산 목숨이라 조금씩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요즘은 도망치지 않고 사람들과 마주하며 아픔을 달랜다.
불러도 대답없는 너, 바라볼 수도, 만져볼 수도 없는 너!
주위 사람들은 잊어야 한다고, 세월이 약이라고 하지만 가슴 한가운데 콱 박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이 박혀 어떤 경우에도 빠지지 않을 옹이가 되어버린 너!
사무치게 그리운 너! 내 뱃속에 열 달 있다 세상에 나와서, 서른두 해만에 다시 내 가슴 속에 들어와버린 너! 그래, 이제 영원히 같이 가자,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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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참여마당 담당자님!
안녕하세요. 저는 환갑진갑 다 지난 할머니 독자인데요. 저는 평생 매일신문만 구독한 독자입니다. 작년에 멀쩡하게 출근했던 아들을 저녁에 영안실에서 맞이하면서 세월호 유가족의 마음을 누구보다 공감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에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같이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그래서 같이 아파하고 그 마음 이해한다고 하는 그런 마음에서 부칠 수 없는 편지, 답장 없는 편지 매일신문에 부쳐봅니다. 감사합니다. 김증출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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