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5일 대구와 삼성이 '서약'을 맺었다.'창조경제혁신센터 설립을 위한 상호양해각서' 체결이 그것이다. 대구시는 이틀 전 보도자료를 통해 '15일 보도'를 요청하는 엠바고를 냈고, 지역 언론들은 당일 기대와 희망을 담은 기사를 일제히 쏟아냈다. 대구 언론 지면은 축제 분위기에 가까웠다.
협약의 골자는 이렇다. 대구시와 삼성이 제일모직 옛 부지에 창업지원센터 건립을 통해 대구시 초중고 및 대학에 소프트웨어 교육지원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청년 벤처기업을 육성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는 이달 2일 국무회의에서 발표된 각 지역을 창조경제의 구심점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17개 시도별로 주요 대기업과 혁신센터를 연계해 지원한다는 계획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구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면서도 상대적 역차별에 대한 불만이 있어왔다. 또한 지난 2000년 삼성의 상용차사업 철수 후 대구와 삼성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도 사실이나, 어쨌든 삼성의 모태가 된 도시다. 이러한 '애증'이 있었기에 대구 시민들의 기대와 희망은 더욱 커 보인다.
그런데 협약 과정을 들여다보면 우려가 드는 몇 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 대구창조경제단지 조성계획은 삼성이 작성한 것이다. 이에 대구시 관계자는 "조성 계획과 관련해 대구시와 삼성의 사전 실무자 간 접촉은 없었다"라고 말하고 있다.'일방적'이라고까지 하기엔 조심스럽지만, 계획 과정에서 대구시가 배제됐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둘째, 삼성은 조성 계획을 통해 조성 비용 900억원과 창업펀드 100억원을 투자할 것으로 밝혔다. 현재 1만3천 평의 조성 부지는 범 삼성가의 소유이며, 공시지가는 1천758억원으로 추정된다. 섣부른 판단이겠지만, 준공 후 공시지가는 당연히 오를 수밖에 없다. 셋째, 창조경제의 최우선 과제는 일자리 창출 일터인데, 대구시에 물으니 "삼성의 조성 계획이 구체화 되어야 일자리 창출 등의 검토가 가능할 것"이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즉 대구시는 현재 일자리 창출 규모조차 파악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 주도로 지자체와 대기업이 손을 잡았다. 하지만 방향을 제대로 잡았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 "공장이 들어왔어야지" 하는 대구시민들의 쓴 소리와 '고작 100억원'인 투자의 아쉬움을 뒤로 하더라도,'삼성=벤처'라는 공식은 사뭇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한국 시장에서 대기업과 벤처는 공존이 아닌 '갑을'구조로 인식되고 있는 터라 자칫 또 다른 하청업체의 양산을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다.
벤처센터보다는 삼성의 직업교육 노하우와 기술 프로그램을 중소기업에 환원'전수하는 '온-오프 교육센터'가 차라리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거의 모든 중소기업이 인재난을 겪고 있다. 취업준비생들이 중소기업을 꺼리는 이유가 연봉문제보다는 입사 후 3~5년 뒤 자질적 차이에 대한 사회적 소외와 박탈감 때문이다. 그러한 격차를 줄이기 위한 교육이 이뤄지고, 각 산업 현장에 피드백된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윈윈'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는 필자가 여러 기업인들에게 적극 제안했던 '아이디어'이기도 하다.
그리고 주지해야 할 건, 정부 정책이 지자체의 대기업 매달리기를 부추기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시혜가 아닌 투자라면 동등한 입장에서 머리를 맞대는 것이 상식이다. 지역 특유의 산업구조와 인프라를 서로 공유하고, 현실 가능한 비전을 함께 내놓을 때 사업의 설득력과 공감대를 이룰 수 있을 터. 대구시의 답변대로 양측 실무자 간 사전 접촉조차 없었다는 것만 보더라도 지금까지의 과정은 삼성에 대한 짝사랑이 과도하다는 느낌이다.
'대기업의 지역할당 지원'이라는 새로운 실험이다.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또다시 대구가 상처받으면 안 된다. 대구는'짝사랑'에 대한 트라우마가 아직 아물지 않았다.
홍의락/국회의원(새정치민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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