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갈등 해소를 위해서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확립하는 것이 선행돼야 하며 공천제도, 국회의원 선거구제도 개혁 등 정치개혁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매일신문사와 광주일보사가 공동 주최한 영호남상생포럼은 1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지역갈등과 세대갈등을 넘어 국민통합의 시대로'라는 주제로 대통합을 위한 국민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주제 발표에 나선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지역'세대 갈등과 국민통합방안'이라는 발제를 통해 "정권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도외시하고 무리한 정책을 밀고 나가면 야당과 비판언론의 견제를 받게 되는데 이에 대해 여권은 색깔론을 들고 나오는 등 문제의 본질을 호도해 왔다"며 "이런 현상이 있으면 지역갈등은 심화된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켜야 지역갈등이 해소된다"고 처방했다. 토론자들도 정치개혁이 우리 사회 갈등구조를 해소하는 첫 번째 열쇠라는 데 공감을 표시하고, 지역갈등 외에도 계층갈등, 세대갈등, 이념갈등 등의 중층적인 갈등 구조가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으며, 이에 대한 해소 내지 완화 노력이 시급하게 요구된다고 진단했다.
이날 토론회는 이언경 채널A 아나운서(1부)와 김대영 경희대 교수(2부)의 사회로 ▷지역갈등 ▷세대갈등 ▷계층갈등 ▷남북갈등 등으로 나눠 7시간 동안 진행됐다.
토론회 내용을 요약 정리한다.
▷1부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지역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집권세력이 올바른 정치를 해야 한다. 정권이 잘하지 못하면 영호남 지역갈등이 깊어지기 마련이다. 정권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도외시하고 무리한 정책을 밀고 나가면 야당과 비판언론의 견제를 받게 되는데 이에 대해 정상적인 정권이라면 겸허하게 수용하고 국정에 반영해야 한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여권은 색깔론을 들고 나오는 등 문제의 본질을 호도했다. 이런 현상이 있으면 지역갈등은 심화된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켜야 지역갈등이 해소된다. 정치권은 영호남 지역갈등 해소를 말하기 전에 정치권은 그들의 텃밭지역에서 이뤄지는 퇴행적 정치 현상을 획기적으로 개혁해야 할 것이다.
중선거구제에 장점이 있지만, 그렇게 되면 선거가 갖는 고유한 심판기능을 저해할 수 있다. 소선거구제의 심판기능도 중요하다. 책임 있는 정부를 이끌어가는 것도 중요하다. 중'대선거구제의 불안한 연정도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많다.
지역경제'사회'정치적으로 변화가 있어야 한다. 지역감정 자체를 해소하려는 노력은 한계가 있다고 본다.
세대갈등은 우리나라만 겪는 문제가 아니다. 인류 사회가 이런 걸 경험해보지 못한 것 같다. 고령화 사회는 연금과 같은 경험해보지 못한 문제를 겪게 된다. 20년 일하고 30년 연금받는 세상이 온다. 우리 사회는 지금 겪어보지 못한 도전을 받고 있다. 깊이 있는 성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천정배 전 법무장관=호남에서는 호남의 지역주의를 영남의 패권적 지역주의에 대해 어쩔 수 없이 저항하는 지역주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다른 지역에서는 영호남이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경쟁적으로 부추기고 있어 양 지역 모두, 특히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 격차를 줄일 수 있는 학술적 연구가 필요하다.
선거구제 개편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소선거구제는 민의를 제대로 반영 못 한다. 또 하나는 승자독식의 문제다. 새누리당이 원내 과반수지만 총선 득표율은 42%로 못 미쳤다. 2004년 열린우리당이 152석으로 다수당일 때 득표율은 38%였다. 선거구제를 독일식 정당명부제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어느 당도 다수가 안 된다. 자연히 협력할 수밖에 없다. 누구도 다수가 아니게 되면 사활 걸린 싸움이 아니라 토론'대화'타협이 이뤄진다고 본다.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는 바로 빈익빈 부익부 문제, 양극화 문제다. 지역 갈등, 다른 갈등을 얘기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양극화 해소다. 지역 갈등, 지역 차별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상 차이,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이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이혜훈 전 새누리당 최고위원=선거구제 개편이 필요하다. 소선거구제이다 보니, 광주에선 새정치민주연합 공천을 받으면 다 된다. 제 고향 마산은 새누리당 공천을 받으면 당선되다시피 한다. 지역구도를 깨려면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해 양당이 상대 지역에서도 당선되도록 해야 지역 구도의 고정관념이 깨지고 지역 갈등의 단초가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양당은 각자 혁신위에서 공천, 완전국민경선제도에 합의했다. 그와 더불어 선거구제 개편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합의를 보면 좋겠다. 중대선거구제로 갔으면 한다. 그게 안 되면 석패율제도라도 해서 호남에서 이정현 같은 사람이 당선되고, 영남에서도 새정치연합이 당선되면 좋겠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나이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인식 못 하는 사이에 산업구조가 바뀌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에 익숙해져 인지를 못하고 있을 뿐이다. 앞으론 세대 간의 갈등이 지금보다 훨씬 커지고 점점 그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굉장히 어려운 시대가 오고 있다.
▶이상훈 매일신문 편집국장=영호남 갈등은 과거에도 존재했고, 부모의 의식을 학습 받아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완화하고 있다. 젊은 세대 일부가 확산하려는 잘못된 노력을 하고 있지만 큰 영향은 없다. 지금은 상생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이제 갈등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차별에서 나타나고 있다. 외국인 투자의 71%가 수도권에 집중되고 있고, 외국인 관광객도 수도권에 70% 이상 온다. 영호남 갈등이 완화되니 수도권과 비수도권 갈등이 폭발 직전이다. 이런 부분이 완화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현호 광주일보 편집국장=호남의 1970년대 인구 비중은 24%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10% 수준이다. 매출액 기준 1000대 기업 중 광주전남 기업은 25개에 불과하다. 100대 기업은 하나도 없다. 지역 간 불균형'격차가 심각하다. 지역 갈등의 개념과 진단을 정확히 해야 한다. 갈등의 해소가 아니라 지역불균형의 해소여야 한다. 영호남 갈등은 반드시 멈춰야 한다. 좁은 대한민국에서 국가적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국가 미래를 어둡게 하는 대립이나 충돌, 갈등은 끝내야 한다. 다만 어떻게 끝낼지에 대해선 가진 쪽에서 양보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2부
▶채진원 경희대 교수=공유하고 싶은 주제는 남북갈등 및 남남갈등이다. 아시안게임이 끝날 때쯤 북한에서 고위급 인사 3명이 다녀갔다. 이후 정치권에선 5'24 조치를 해제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그런데 민간단체 삐라 살포로 총격전도 있었다. 한쪽에선 자제하자는 주장이 있다. 표현의 자유고 탈북자들이 북한 김정은 체제의 독재를 민주화시키기 위한 자율적인 활동이니 법으로 규제할 수 없다는 입장도 있다. 이번 국면 자체가 남북갈등 내지 남남갈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지혜로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남남갈등이란 정부의 대북'외교정책을 둘러싸고 남한 내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것이다. 남북갈등의 해결을 위해서라도 공론을 모아가는 과정이 필요한데, 지금까지 경험으로 미루어, 정권이 바뀌면서 대북정책이 합의된 방향이 없었다. 통계조사상으로는 대북정책에 만족하느냐고 물어보면 70% 이상이 불만족한다는 반응이다. 결과적으로 잘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북갈등 해결을 위해 정책'비전이 필요한데 그때그때 여론이나 당, 대통령에 따라 갈팡질팡해온 게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더 큰 문제는 남북대화냐, 안보냐 하는 문제다. 서로 다른 가치'규범이 끊임없이 충돌하면서 제3의 방법이 없었다.
문제가 지속되는 건 정치 엘리트의 역량'지혜가 부족해서가 아닐까 싶다. 국민의 대표자라면 갈등이 왜 생기는지 알아야 한다. 어떤 지점에서 갈등이 생기고 어떻게 해결되는지 논의해야 바람직한데, 통계를 보면 남남갈등은 국민들 차원의 갈등이라기보다는 국민과 무관한 정치 엘리트 간의 갈등이라는 것이 잘 나타난다. 정치 엘리트가 표방하는 이념이 극단화하고 이것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면서 남남갈등으로 변질된다. 문제는 국민이 아니라 정치 엘리트다. 양 정당, 보수당'진보당의 양극화가 문제다.
정치적 양극화를 견제할 수 있는 중간세력, 균형되게 할 세력이 나오지 않으면 이 문제 해결이 어렵다. 진영논리, 즉 진보-보수, 민주-반민주 등의 논리로 생산해 낸 남남갈등을 중단하려면 중도무당파가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정치현실에 중도층이 진입하는 건 어렵다. 기존 정치가 양극화하면 1등 아니면 2등을 하고 기득권을 누릴 수 있으니까 유인 동기가 없다. 현 체제만으로도 엄청난 프리미엄을 가진다.
중도주의 세력이 역할을 하고 결집해서 양극화 세력, 진영논리 세력을 견제하고 균형 잡지 않으면 정치의 양극화 문제 해결은 힘든다고 본다.
▶김윤 경국학당 대표=대한민국은 헌법에 있듯 민주와 공화라는 가치로 존립한다. 공화라는 가치가 지속 가능하게 실현되려면 5가지 갈등, 즉 세대'지역'이념'계층'남북 문제에 힘을 모아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공화국은 지속 불가능하다. 대한민국이 지속 가능하려면 후배세대가 기회'희망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런 나라가 제대로 된 민주공화국이다. 우리와 아래 세대는 대한민국이 기회와 희망을 주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제기하고 있다. 겉으로는 민주사회지만 부모의 능력이나 학벌이 세습되는 사회가 아닌가 싶다. 의지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 자기를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란 뜻이고, 민주공화국이 아니라는 뜻이다. 산업화'민주화 속도도 굉장히 빨랐지만 기회의 문이 닫히는 속도도 빠르다. 기득권 담합 구조가 매우 빠른 속도로 구축되는 것 같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궁극적인 해법, 키를 잡고 있는 게 정치다. 비난하고 비판하면서도 결국 정치로 갈 수밖에 없다. 기득권 담합 구조를 근본적으로 타파할 수 있는 여건, 민주공화국의 원리와 원칙을 계속 구현해 나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공공적 의미에서 정치의 순기능이고 정치가 그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실 정치가 그 역할을 못 하고 있다.
▶전계완 매일P&I 대표=영호남 문제가 구조적으로 심각한데도 그것을 넘어 수도권'비수도권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영남은 수도권'비수도권 문제 해결을 위해 수도권 이외 지역 중 호남과 연대하고 싶겠지만, 호남은 철두철미하게 외면받은 것에 대한 설명 없이 영호남이 힘 합쳐 수도권에 대적하자는 게 말이 되는지 묻고 있다. 갈등의 형태는 훨씬 더 다양해지고, 갈등 하나하나가 가진 사정은 훨씬 복잡한 형태로 사회가 발전돼 갈등공화국 상태에 있다.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지역'계층'이념 등 모든 갈등은 각기 떼어놓고 보면 달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로 흐르는 맥이 있다. 갈등이란 것이 이미 우리 사회의 경제규모나 의식수준으로는 해결 불가능한 과정에 들어섰다. 갈등은 해결 대상이 아니라, 관리 대상이 됐다. 정부든 정치권이든, 관리 방식에 대한 합의'절차의 정당성에 집중하지 않으면 어떤 형태의 갈등도 해결 불가능하다고 본다.
북한 문제를 통해 정치'경제'사회'문화'노동'민족 문제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제안하고 싶다.
▶이동관 매일신문 문화부장=모든 갈등'왜곡 구조의 뿌리에는 정치가 있고 해결 순서도 정치가 먼저다. 정당 공천제도 개혁과 함께 전체를 먹지 않으면 전부 잃어버리는 승자독식의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를 개혁하지 않으면 지역 할거해서 양대 정당이 땅따먹기 하는 구조는 계속될 것이다. 대통령이 누가 되든지 양 정당 나눠 먹는 구조는 이어질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는 것보다 국회의원 소선거구제 바꾸는 게 더 급하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게 교육 개혁이다. 민주사회'공화사회가 되려면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 사람의 인생을 대학 입시로 결정하는 지금의 시스템, 기회의 균등'평등조차 사라지는 현재 구조는 문제가 있다. 교육이 부와 권력 세습의 도구가 되고 있다. 서울수도권과 지방의 차이도 심각하다. 지방은 기층민'평민이고 서울은 귀족'양반이라고 본다. 이 문제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해소 내지 완화하려는 노력이 수반되지 않는 한 가장 심각한 갈등으로 발전할지도 모른다. 이건 영호남 지역갈등을 능가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울'수도권과 지방의 갈등은 더 심해질 것이다. 그 해결책이 지방자치제도의 강화와 지방분권이라고 본다.
이지현 기자 everyda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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