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달(閏月). 어쨌든 좋은 달이다. 올해 윤달은 이달 24일부터 다음달 21일까지다. 음력에 익숙한 50대 이상 부모 세대들은 1년 12개월 외에 몇 년 만에 한 번씩 돌아오는 윤달을 '공달' 또는 '덤달'이라 불렀다. 보너스로 받은 1개월인 만큼 집안의 중요한 일을 보기에 마음이 한결 가벼웠을 것이다.
음력 기준으로 살았던 세대들에게 윤달은 마음의 여유를 줬다. 24절기에 따라 농사를 짓고, 바쁘게 집안일을 하다보니 뒤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몇 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윤달은 자식을 결혼시키거나, 이사를 가거나, 조상묘를 이장한다든지, 수의를 하는 등에 딱 좋은 시기가 됐을 것이다. 음력만이 줄 수 있는 이 여유로운 한 달 '윤달'을 우리 조상들은 슬기롭게 사용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지역 유통업체에서는 윤달에 수의를 마련해두면 자손이 번창한다는 속설로 수의 판매전이 한창이다. 더불어 '윤달에 장사를 시작해야 장사가 잘된다'는 속설 때문인지 일부 상인들은 윤달 중 하루를 재개장일로 택일한다고 한다. 하지만 지역의 한 역술인은 "윤달은 운명학적 개념과는 크게 관계가 없다"며 "전통적으로 전해오는 말들에 불과한데, 이런저런 설(說)들이 우리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달은 악귀들의 휴가철
'윤달에는 송장을 거꾸로 세워도 탈이 없다.'
윤달과 관련된 재밌는 속담이다. 무슨 일을 해도 탈이 없을 만큼 여유와 행운이 뒤따른다는 말이다. 윤달이 아니면 집안에 못을 하나 박아도 방위를 보아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집수리나 이사도 윤달에 하면 가릴 것이 전혀 없다고 한다.
명리연구원 희실재 하국근 원장은 '윤달을 귀신들의 휴가철'에 비유했다. 하 원장에 따르면 윤달에는 좋은 신이든 나쁜 신이든 옥황상제에게 문안인사를 드리러 가는 달로 그 한 달 동안에는 무슨 일을 하든 길일이나 흉일이 될 수 없어, 무탈하게 집안 대소사를 치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 원장은 "윤달에 집안 큰일을 하는 것은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것"이라며 "이사나 집수리, 묘이장, 수의(壽衣) 등은 보통달에도 길한 날을 택하지만 윤달은 '덤달'이어서 그 한 달 동안에는 아무 날을 택해도 길하거나 흉하거나 하는 날이 아니다"고 말했다.
'동국세시기'에는 윤달의 관습에 대해 '풍속에 결혼하기에 좋고, 수의를 만드는 데 좋다. 모든 일을 꺼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나이 많은 노인이 있는 집에서는 꼭 윤달에 수의를 만들고, 산소를 손질하거나 이장하는 일도 흔히 윤달에 많이 했다. 다만, 결혼만은 사정이 좀 다르다. 최근 들어 윤달에 결혼을 기피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평생의 대사인데, 윤달이 큰 의미가 없다고 본 탓이다.
◆바빠진 묘 이장, 이사, 수의
윤달에 날개를 단 업체들은 바빠졌다. 특히 가을 결혼 성수기와 윤달이 맞물리면서 관련 업체들은 대목이다. 관련업체 전문가들은 "신혼주택 관련 업체들과 혼수 업체, 묘 이장, 수의 등 윤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업체들의 주가가 크게 상승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택 리모델링 전문업체인 한솔홈데코은 최근 주가가 14.09%나 상승했다. KCC와 LG하우시스도 각각 5.6%, 3.67% 올랐다. 한샘과 에이스침대도 연일 상종가를 기록하고 있다. 대구경북의 이사 업체나 묘 이장 관련 업계도 바빠지기는 매한가지다. 결혼 업계는 윤달을 피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윤달 전후로 더 바빠졌다. '다모아' 결혼상담소 옥영혜 상담사는 "요즘은 윤달에 결혼하는 것을 피하기 때문에 윤달 이전과 이후에 결혼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며 "윤달이 끼어있는 해는 윤달 전후가 더 바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윤달은 사찰도 바쁘게 한다. 윤달에 불공을 드리면, 극락세계로 간다고 하기 때문이다. 광주(廣州) 봉은사(奉恩寺)에는 윤달에 여성 불자들이 다투어 불공을 드리며, 시주를 한다. 윤달이 다 가도록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영남지역에는 윤달에 정성스레 불공을 드리는 관습이 있으며, 경기도에는 윤달에 3번 절에 가면 모든 액운이 소멸되고 복이 온다고 해서 부녀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한편 제주도에는 윤달에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를 올리는 풍속이 있다. 생전예수재란 생전의 죄를 모두 용서받고, 극락왕생하기를 생전에 비는 불공을 말한다. 또, 윤달에 사망한 사람을 위해 그 제사를 윤달에 지내는데, 그 윤달 날짜의 원래 달(原月)에도 하기 때문에 한 해에 2번 제사를 지내는 일도 있다. 윤달 생일을 가진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기획취재팀 권성훈 기자 cdrom@msnet.co.kr
※윤달= 태음력상 역일(曆日)과 계절이 서로 어긋나는 것을 막기 위해 끼워 넣은 달이다. 태음력에서의 1달은 29일과 30일을 번갈아가며 사용하는데 이를 1년 12달로 환산하면 354일이 된다. 365일을 기준으로 하는 태양력과는 11일이 차이가 난다. 이렇듯 태음력(太陰曆)은 태양력과 날짜를 맞추기도 어렵거니와 계절의 추이를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윤달을 둬서, 이러한 날짜와 계절의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 만든 치윤법(置閏法)에서 나온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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