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표의 등가성' 원칙만 강조한 '선거구 헌법 불합치'

인구 수 따라 1표가 3표 가치 평등선거 원칙 위반 판단…지역 불균형 심화엔 눈 감아

헌법재판소가 30일 현행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 조항에 대해 제기된 헌법소원 심판에서 내린 결론은 한마디로 "더 이상 선거구 간 인구편차가 두 배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사실 헌재는 이미 지난 2001년 인구편차를 '4대 1'까지 허용했던 당시 선거구 획정 기준에 대해 위헌 판단을 내리면서 허용할 수 있는 한계를 '2대 1'로 제시했다. 다만 당장 바꿀 경우 여러 가지 정치,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3대 1'까지는 인정한다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 이후 13년이 지나면서, 특히 인구가 크게 증가한 경기와 호남권 인구를 넘어선 충청권의 불만이 커졌다. 이에 따라 선거구 문제가 헌법소원으로 공론화되자 헌재가 이번에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분석이다.

헌재의 이 같은 결정 논리의 배경에는 '표의 등가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현재 간의 근본적 차이는 없다. 투표구에 상관없이 한 표의 가치는 모두 똑같은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행정구역이나 생활권, 지방세 등의 문제 탓에 일정한 편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나, 그 차이가 기존처럼 '3대 1'까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구가 적은 지역구의 한 표는 인구가 많은 지역의 3표와 같은 가치와 효력을 갖게 됨으로써 평등선거의 원칙을 위반하게 된다는 것이 헌재의 판단이다.

헌재는 이번 결정에서 "인구 수가 적은 곳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보다 더 많은 표를 얻고도 낙선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헌재는 또 국회의원은 지역의 이익보다 국가 전체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점도 이번 결정의 중요한 이유로 제시했다. 지방자치제도가 이미 정착됐기 때문에 지역 대표성 문제가 어느 정도 보완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헌재의 이런 태도는 지방자치의 현실과 비수도권 지역의 암울한 실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서울 중심적 사고'에서 나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헌재 내부에서조차 ▷평등선거는 행정구역, 교통 등 인구외적 요인도 고려해야 하며 ▷도'농 간 차이와 개발 불균형 심화에 따른 지역 대표성이 필요하고 ▷선거구 획정 인구 기준을 '2대 1'로 하면 영'호남의 국회의원이 줄고 수도권 국회의원은 늘어나 오히려 평형성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모두 소수 의견에 머물렀다.

또한 일부 전문가들은 "대부분 양원제로 지역 대표성을 보완하는 선진 각국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단원제 국회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외국에서도 2대 1을 넘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식으로 본질을 호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지방자치가 지역 대표성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했다는 설명에 대해서도 '참담한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현실'을 헌재가 애써 외면했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각종 법령에 따른 제약과 빈약한 지방재정으로 절름발이 상태인 지방자치를 빌미로 수도권에 정치권력마저 더욱 집중시키는 결정을 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헌재의 결정은 '서울 중심주의 사고를 바탕으로 한 형식주의적 논리로, 지역 간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외면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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