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스턴트 커피 이렇게 마셔도 되잖아…

커피로 그림도 그린다? 진화하는 인스턴트 커피

접이식 컵과 인스턴트 커피 봉지를 결합한
접이식 컵과 인스턴트 커피 봉지를 결합한 '커프리'의 디자인. 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커피 봉지를 따고, 탭을 당겨 봉지를 컵 모양으로 벌린 후, 물을 붓고 봉지 뚜껑을 숟가락 삼아 저은 후, 커피를 즐긴다. 얀코디자인
커피로 그린 그림
커피로 그린 그림 '매우 향기로운 세상'

커피를 꼭 커피 전문점에서 한 끼 밥값만큼 비싼 돈을 내고 마셔야 하는 것은 아니다. 원두커피 시장이 해마다 몸집을 키우고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소비하는 커피는 여전히 인스턴트 커피다. 저렴한 가격과 편리함, 최근 고급화한 맛으로 소비자 기호를 맞추고 있는 인스턴트 커피의 아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인스턴트 커피와 관련된 아이디어도 진화하고 있다. 인스턴트 커피 비닐봉지에 막대기를 달고, 커피 봉지가 종이컵으로 변신하는 디자인은 인스턴트 커피족들을 흐뭇하게 만든다. 또 인스턴트 커피가루를 물감으로 활용해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도 있다. 인스턴트 커피의 다양한 변신을 살펴보자.

◆ 커피봉지 뜯으니 안에 숟가락이-스푼인

이 질문에 먼저 답해보자. 1. 인스턴트 커피를 마실 때 숟가락이 없어 커피 봉지로 저은 적이 있다. 2. 사무실 컵에 담겨 있는 숟가락으로 커피를 저어도 되지만 찜찜해서 잘 쓰지 않는다.

'스푼인'(The Spoonin)은 이 같은 불편함에 주목했다. 인스턴트 커피 봉지를 뜯으면 안에 막대기가 들어 있는 단순한 아이디어로 편리함과 위생을 동시에 잡았다. 막대기나 숟가락 등 저을 수 있는 도구를 항상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 편리하고, 먼지가 묻은 커피 봉지를 쓰지 않아도 돼 위생적이다. 제품 구성도 단순하다. 봉지를 열면 내부에 막대기가 들어 있는데, 가운데 부분을 접어 숟가락 모양으로 만들면 된다. 노마리아, 이주현, 노진혁 디자이너의 작품인 스푼인은 2011년 독일 'iF 콘셉트 디자인 어워드' 수상작에도 이름을 올렸다.

◆막대기에 커피가 묻어 있네!-커피 온 어 스틱

인스턴트 커피의 개념 자체를 바꾼 디자인도 있다. '커피 온 어 스틱'(Coffee On A Stick)은 인스턴트 커피를 가루로 만들어 봉지에 담아야 한다는 생각의 틀에서 벗어난 제품이다. 이 디자인은 막대기에 고체 형태의 커피를 붙였기 때문에 뜨거운 물에 막대기를 넣고 저으면 커피가 완성된다. 커피 봉지를 찢고, 가루를 컵에 부은 뒤 숟가락으로 저어야 하는 인스턴트 커피 제조 과정을 더 간편하게 만들었다. 또 막대기마다 카페라테, 카푸치노, 아메리카노 등 다른 맛을 부착해 골라 먹는 재미까지 준다.

◆컵, 숟가락, 커피가 하나에!-커프리

'커프리'(Coffree)는 편리함과 환경을 동시에 고려한 디자인이다. 디자이너들은 한 번만 사용하고 버려지는 종이컵과 인스턴트 커피 봉지가 자원 낭비라고 생각했고, 접이식 컵과 인스턴트 커피 봉지를 결합하는 포장 기술을 개발했다. 사용법도 간단하다. 먼저 커피 봉지 입구를 찢고, 갈색 라벨에 적힌 대로 봉투를 벌려 컵 모양을 만들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 끝이다. 별도의 컵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데다 종이컵 사용량도 줄이는 똑똑한 디자인이다.

◆ 물감으로 쓰면 어떨까 …커피로 그리는 그림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지 않고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 사람도 있다. 홍지철(28) 작가의 작품 중심에는 커피가 있다. 화려한 물감 대신 인스턴트 커피믹스를 갈아 만든 '커피 물감'이 주재료이며, 작품에는 커피원두 생산국에서 일하는 어린이들이 등장한다. 홍 작가의 대표작은 '매우 향기로운 세상'. 커피를 밥처럼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이 시대에 커피 노동을 하는 아프리카 아이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취지에서 2011년부터 시작된 작품이다. 햇볕에 그을린 아이의 피부, 슬픈 눈망울, 머리카락 등 세세한 묘사를 모두 커피로 한다.

그가 처음부터 커피를 재료로 사용한 것은 아니다. 홍 작가는 "흑인 아이를 주로 표현하다 보니 갈색과 커피 색감이 겹쳤다. 커피로 색을 표현하면 어떨까 하고 호기심에 시작한 것이 이젠 작품의 주요 재료가 됐다"고 말했다.

홍 작가가 사용하는 커피는 인스턴트 커피인 커피믹스다. 말로만 들어서는 이해가 안 돼 홍 작가와 함께 커피 물감을 만들어 봤다. 가장 먼저 하는 작업은 굵은 커피믹스 가루를 통에 넣고 잘게 부수는 일. 그다음 촘촘한 체에 잘게 빻은 커피가루를 걸러낸다. 커피 물감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농도 조절이다. 부드러운 커피가루에 물을 적당히 섞어 걸쭉하게 만드는 것이 포인트다. 홍 작가는 "커피에서 나오는 색깔만으로 그림을 그려야 하기 때문에 농도를 조절해 다양한 색깔을 표현한다. 또 머리카락처럼 거친 부분을 표현할 때는 붓으로 그리는 대신 굵은 커피가루를 흩뿌리는 식으로 작업한다"고 설명했다.

4년 넘게 커피믹스만 사용하다 보니 이 분야에도 전문가가 됐다. 한 달에 작품에 사용하는 커피믹스 양만 해도 500g 한 봉지 정도다. 홍 작가는 커피믹스 제조사와 브랜드 별로 색깔이 조금씩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가장 애용하는 커피믹스는 동서식품의 '맥심'이다. 그는 "김태희가 광고하는 '프렌치카페'는 내가 원하는 색이 잘 안 나와오더라"며 "맥스웰하우스와 테이스터스 초이스 커피믹스도 색이 진하게 잘 나오는 편"이라고 웃었다.

글 사진 황수영 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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