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활의 풍류산하] 생선회에 관한 나의 생각

어느 일간지에 활어회 먹는 방법에 대한 글 한 편이 실렸다. 요약하면 낚싯배에서 갓 잡아 올린 생선을 그 자리에서 회를 쳐 먹으면 맛이 없다는 것이다. 생선은 내장과 피를 제거하고 덩이째 부직포에 감아 하루 이틀 숙성시켜 먹어야 제대로 맛이 난다는 주장이었다. 맞는 말이다.

이 글을 쓴 필자는 낚싯배를 타고 어부와 함께 바다로 나간 연예인 또는 유명 인사들이 화면에서 생선회 한 점을 입에 넣고 엄지를 치켜들며 "생선회 맛이 최고예요"라고 호들갑을 떠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몰아세운다. 그는 "그건 분위기 탓이거나 초장 또는 생선회 살점에 둘둘 감은 묵은지 맛이지 본연의 생선 맛은 아니다"고 했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방송의 속성상 이야기를 끌고 가는 화자는 맛이 있든 없든 간에 "으음, 맛이 아주 담백하고 감칠맛이 나네요"하며 생선회 편을 들어줘야 한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신문에 글을 쓴 이의 말대로 활어회는 정말 맛이 없는 것일까. 살아 있는 고기를 바다에서 끌어올려 배 위에서 회로 쳐서 먹으면 '살이 뭉클하고 질기며 비리다'는데 그게 정말일까. 내 주변의 몇몇 지인들은 "갓 잡아 올린 생선은 맛이 없다는데 이 말을 믿을 수가 없다"는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글쓴이를 대신하여 옹색한 변명을 하긴 했지만 뒷맛이 개운하지 않았다.

맛은 규격으로 재단할 수 없다. 갓 잡아 올린 싱싱한 맛을 우위에 두는 사람은 팔딱팔딱거리는 목숨 붙은 생선회 맛을 최고로 칠 수도 있다. 그러나 과학적인 견해를 앞세워 '생선은 숙성 과정을 거쳐야 이노신산이 풍부해져 감칠맛이 난다'는 쪽의 주장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근육을 가지고 있는 모든 동물은 목숨이 끊어지면 살이 경직되면서 오그라져 단단해진다.

생선은 살이 단단한 것과 살이 무른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단단한 놈은 복어 넙치 돔 등이며 무른 놈은 참치 농어 민어 방어 등이다. '생선의 껍질을 벗기고 살을 얇게 썰어 천으로 물기를 닦아낸 후 생강과 파를 접시에 곁들이고 겨자를 양념으로 쓴다.'(홍만선이 지은 산림경제)는 옛 기록으로 유추해 보면 조선조 때만 해도 살이 무른 생선은 횟감으로 쓰지 않은 것으로 짐작된다. 살이 단단한 놈들은 콜라겐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씹으면 쫄깃쫄깃하고 맛도 좋다. 그래서 회를 뜰 때는 얇게 썰어야 하고 살이 연한 놈들은 두껍게 썰어야 씹는 맛이 좋아진다.

앞서 말한 '숙성된 생선만이 횟감으로 제격'이란 글은 무른 살 생선에 국한된 견해인 것 같다. 민어나 농어는 얼음 위에 얹어 숙성시켜 살얼음이 낄랑 말랑할 때 썰어 먹으면 그야말로 환상이다. 또 참치는 살이 무른 편이지만 태평양에서 트롤 낚시로 잡은 놈을 당일 회로 뜨면 선홍색 회가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사이판에서 사흘 내내 저녁은 참치회만 먹은 적이 있는데 지금도 아련하기만 하다.

생선회 하나를 두고 이런저런 주장이 많은데 간단하게 결론을 내자. 무른 살 생선이라도 아가미 밑 뱃살 부분은 기름기가 많아 구수하고 쫄깃하다. 이건 잡아 당장 회를 쳐도 숙성된 살코기보다 훨씬 맛이 있다. 나머지 부분은 숙성시켜 다음날 먹으면 물컹거리지 않는다.

회를 뜰 때 벗겨둔 껍질은 끓는 물에 살짝 데쳤다가 얼음물에 급랭시켜 참기름 소금에 찍어 먹으면 맛이 그만이다. 생선 대가리는 반으로 갈라 천일염을 출출 뿌려 참숯 화덕에 구워 먹으면 이것 또한 별미다.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오 야끼'가 바로 이것이다.

숙성 여부에 너무 집착하면 오히려 맛이 반감한다. 서해 서천의 마량포구에서 살이 단단한 대형 넙치(광어) 6㎏짜리를 내 손으로 회를 뜬 적이 있다. 숙성되기 전인 갓 잡은 상태의 회도 옆집 아저씨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정도로 엄청 맛이 있다. 지느러미 옆에 붙어 있는 통상 '엠삐라'로 부르는 뱃살 맛은 군침이 돌아 말을 더 이상 계속할 수가 없다.

생선회 맛은 개인의 필링이지 실험실의 성분 분석으로 점수를 매길 수는 없다. 생선의 종류와 질, 계절과 장소, 그리고 날씨와 동반자에 따라 맛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촬영에 나선 뱃전의 연예인이 엄지를 치켜들고 "이 맛이 최고야"라고 소리치는 광경을 두고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숙성 안 된 생선도 맛만 좋다. 동해의 새벽 죽변항에서 도다리 낚싯배를 타보면 안다. 지느러미가 붙어 있는 툼벅툼벅하게 썬 도다리 세꼬시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쐬주 한 잔 했으면 정말 조컷다. 정말이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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