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의 4대보험료 체납액이 1조원에 육박(본지 3일 자 1면 보도)하면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보험료를 체납한 사업주들이 타인 명의로 재산을 빼돌리거나 버티기 식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체납 보험료에 대한 강제 징수 절차에 나서기 전에 자발적으로 납부할 수 있도록 다양한 압박 수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숙지지 않는 악성체납
대구 남구에 있는 모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램 개발업체는 2012년 3월부터 4대보험료를 단 한 푼도 낸 적이 없다. 직원 11명이 근무하는 이 업체가 체납한 4대보험료는 3천170만원. 국민건강보험공단 대구본부는 이 업체 대표가 소유한 자동차 2대를 압류하고 지난 9월 업체 대표에 대해 형사고발 예정 통보서까지 보냈지만 요지부동이다.
업체 대표는 "돈이 없으니 마음대로 해라. 벌금을 내느니 차라리 실형을 살겠다"고 버티고 있다. 건보는 이달 말까지 체납 보험료를 내지 않으면 형사고발을 추진할 방침이다.
남구의 다른 공연기획사는 지난달까지 4대보험료 2천870만원을 체납했다. 외국인 근로자 3명 등 6명이 근무하는 이 업체는 3년 가까이 보험료를 내지 않았다. 건보공단이 체납액 징수에 나섰지만 업체 법인 명의로 된 재산은 전무한 상황. 건보공단은 업체 대표자 명의의 예금을 모두 압류하고 이달 말까지 보험료를 내지 않으면 업체 대표를 형사고발하기로 했다.
구미시 송정동에 있는 한 건축소재 제조업체는 지난 1년간 4대보험료 2억3천200만원을 내지 않았다. 이 업체는 법인 소유의 재산이 자동차와 건설기계, 출자 증권 등 즐비하고 대표이사 소유의 부동산도 있지만 보험료를 내라는 재촉에는 요지부동이다.
구미시 공단동의 휴대전화 케이스 제조업체도 사정이 비슷하다. 이 업체가 체납한 보험료는 4억8천900만원. 건보가 공장용지와 관세 환급금, 거래대금 채권, 예금계좌 등 조회가 가능한 모든 자산을 압류했지만 보험료는 '나 몰라라'하는 형편이다. 결국 건보는 이 업체 대표를 형사고발했다.
이 같은 4대보험료 체납은 건강보험료 인상의 요인이 된다. 올해 건강보험료는 1.35% 인상됐다. 보험료 납부를 고의로 거부하는 일부 사업주의 행태 탓에 90% 이상의 성실납부자들이 피해를 보는 셈이다.
◆도덕적 해이가 체납 불러
보험료를 체납하는 업체들의 공통점은 법인이나 대표자 명의의 재산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건보가 체납 보험료 징수를 위해 압류 등의 조치를 취하려 해도 막상 돈 되는 자산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 때문에 압류를 통해 체납 보험료 추심을 해도 회수가 쉽지 않다.
끝모를 경기 침체로 보험료를 못 낼 만큼 형편이 어려운 사업장도 상당수이지만, 법인 설립 당시부터 대표자 명의로 재산을 두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탈세나 의도적인 보험료 체납이 의심스러운 이유다. 4대보험료를 체납할 경우 건보는 체납처분 승인을 받아 대표자의 재산을 조회해 압류한다. 그러나 납부 저항이 큰데다 배우자나 가족 명의의 재산은 조회할 수 없기 때문에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직원 2명이 근무하는 대구 수성구 모 건축사사무소의 경우 건강보험료는 44개월, 산재보험료는 41개월이 밀렸다. 이런 식으로 밀린 보험료는 2천785만원이나 된다. 멀쩡히 영업 활동은 하고 있는데도 대표자 앞으로 된 재산은 전무한 상황. 건보 징수 담당 부서에서 수차례에 걸쳐 예금을 압류하고 납부를 독촉했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런 경우 사업 시작 단계부터 악의적으로 미리 명의를 이전했을 가능성이 높다. 재산이 있더라도 가족이나 타인 명의로 매매를 가장한 경우도 있다. 사행행위가 의심스럽지만 처벌을 하려면 법원의 판결이 있어야 한다.
◆체납은 선의의 피해자 불러
체납한 법인 대표는 6개월 이상 체납했을 경우 건강보험으로 지급한 진료비 중 건보부담금을 고스란히 환수당한다. 고용유지지원금과 신규고용촉진장려금, 고령자고용촉진장려금 등 고용노동부의 각종 지원금 지급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산재사고가 나면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산재보상 급여의 10%를 사업주가 별도로 부담해야 한다. 500만원 이상 고용'산재보험 체납 사업장은 은행연합회에 체납 및 결손처분 자료가 넘어가고 체납액이 10억원 이상이면 인적사항이 공개된다. 연체료도 만만치 않다. 보험료의 3~9%까지 연체금이 부과되며 4대보험 체납자에 대해 건보공단이 파산신청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로자는 건강보험과 산재보험, 고용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실업급여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국민연금의 경우 근로자는 체납 기간이 국민연금 가입 기간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연금액이 줄거나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장애'유족연금의 경우 납부한 기간이 전체 고지기간의 3분의 1에 못 미치면 연금을 받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4대보험 체납을 막으려면 강력한 징수 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구미시의 한 금속제품 제조업체의 경우 4대보험료 9천586만원을 체납 중이다. 건보는 법인 소유 토지 2필지와 예금채권 및 특허권을 압류한 데 이어 지난해 2월 대표자를 형사고발했다. 업체 대표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의 실형이 선고됐고, 체납 보험료를 내기로 약속했다.
부처 간 정보 공유도 필요하다. 체납되기 전에 간접적으로 납부를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가령 제조업체의 경우 법인 대표나 법인 명의의 재산이 없더라도 영업 활동에서 발생하는 매출 자료를 확보하면 실제 거래가 어느 정도 이뤄지는지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자료는 과세 자료이기 때문에 국세청이 관리한다. 법적으로 과세 자료는 과세자 비밀유지조항 때문에 타 기관에 제공할 수 없다.
건보공단 대구본부 관계자는 "장기'고액 체납의 경우 사업자등록 말소나 직권 폐업 등 강력하게 제재하고 4대보험료 완납 증명서가 없으면 공공기관 입찰 제한을 하는 등 압박수단이 필요하다"면서 "이는 국세청이나 조달청 등 정부기관과 협조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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