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부끄러운 침묵

"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이어서 그들이 사회민주당원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기에/이어서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기에/이어서 그들이 유대인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이어서 그들이 내게 왔을 때 그때는 더 이상 나를 위해 말해줄 이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히틀러 암살 모의에 가담했다가 처형된 독일 신학자 디트리히 본 회퍼와 함께 반(反) 나치 운동을 전개한 마틴 니묄러 목사가 쓴 것으로 알려진 '그들이 처음 왔을 때'라는 시(詩)다. 2차 대전 후인 1946년 니묄러가 나치의 집권을 불러온 독일 국민의 침묵과 방관을 참회한 연설에서 기원한 것으로, 원래는 시가 아니었으나 구전(口傳) 과정에서 집단 창작으로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됐다고 한다.

이 시가 말해주듯 히틀러의 집권에 독일국민은 침묵했고 이는 나중에는 적극적인 동조로 발전해갔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미시시피 주립대학의 로버트 젤라틀리 교수의 연구다. 그에 따르면 히틀러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던 1939년 독일 전역의 비밀경찰 즉 게슈타포의 수는 7천 명에 불과했다. 이는 독일 국민 전체를 감시'통제하기에는 턱없이 적은 규모다.

그러나 게슈타포는 잘 기능했다. 아래로부터 끊임없는 밀고와 제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히틀러의 독일이 위에서 질서를 부과하는 경찰국가가 아니라 국민이 스스로 질서를 지키는 '자경국가'(self-policing state)였다는 얘기다.('새로운 세대를 위한 세계사 편지' 임지현).

일본 아베 정권의 우경화 역시 이런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아베가 외조부인 2차 대전 A급 전범(戰犯)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를 추종하는 인물임을 일본 국민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 인물이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일본 국민이 아베가 어떻게 행동할지를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체했음을 뜻한다. 일본 극우세력이 내년에 치러질 참의원 선거 때에 맞춰 '평화헌법'을 개정한다는 목표로 '1천만 명 서명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에 일본 국민은 어떻게 행동할까. 이번에는 침묵하지 않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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