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금주의 정치이슈] 역대 정부의 비선 정치

현 정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선(秘線) 실세 논란. 그 속 권력 암투. 정가는 정윤회, 박지만, 문고리 3인방, 십상시, 조응천, 박관천 등의 이름으로 얽히고설킨 비선 관계를 도마에 올리고 있다. 정윤회 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인사(人事) 등 국정운영에 관여했다는 문건이 유출됐다. 그 내용의 진실성 여부와 어떤 경로로 유출됐는지에 대한 공방으로 어지럽다. 비선의 대두는 국정운영이 투명하지 못하다는 방증이다. 정부에 대한 국민 신뢰가 떨어진다. 공직기강이 해이해진다. 국정이 농락당했다는 국내외 뉴스가 전파된다. 레임덕이 나온다. 국격(國格)이 손상된다.

◆비선의 역사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나?

역대 정권의 비선은 악의 축으로 심판받았다.

▷이명박정부는 영포회 논란으로 얼룩졌다.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을 두고 '영포회'(영일 포항 출신 고위공직자 모임)란 비선 조직이 등장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이 영포회 핵심으로 꼽혔다. 친이계 대표격이었던 정권교체의 공신 정두언 국회의원이 '만사형통'(萬事兄通'모든 일은 형을 통한다)으로 불린 이 전 부의장을 겨눴고, 이 전 부의장은 '2선 후퇴'를 선언하게 됐다. 이 전 부의장은 정권 말 저축은행 로비 자금 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왕차관' 박 전 차장은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와 관련한 금품 수수, 원전 비리 혐의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노무현정부는 노 전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 씨의 영향력 행사를 두고 말들이 많았다. 정부 인사에 개입한다는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노 씨는 '봉하대군'으로 불렸다. 노 씨는 세종증권 인수 과정에서 29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이명박정부 출범 직후 구속됐다.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 현 충남지사와 이광재 전 강원지사도 불법 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김대중정부에서는 대통령의 세 아들인 홍일, 홍업, 홍걸 씨가 '홍삼 트리오'로 불리며 비선 실세로 등장했다. 정현준'진승현'이용호게이트에 연루된 차남 홍업 씨는 기업으로부터 불미스런 돈을 받은 뒤 조세 포탈한 혐의로 2002년 구속 기소됐다. '최규선게이트'에 연루된 삼남 홍걸 씨는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청탁을 받아 구속됐다. 장남 홍일 씨는 2003년 나라종금 로비 사건에서 1억5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노태우정부에서는 박철언 씨를 중심으로 한 '월계수회'가 영향력을 행사했다. 김영삼정부에선 차남 현철 씨가 비선 라인의 핵심으로 통하면서 '소통령'으로 불렸다. 1997년 한보 사태 이후 현철 씨는 기업인들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수감된 바 있다.

◆정윤회, 3인방, 십상시 vs 조응찬, 박관천, 박지만

"정윤회 씨가 주도하는 십상시 회동이 있었다. 이 모임에서 정부 인사 등 국정 개입이 있었다. 김기춘 비서실장 사퇴설까지 유포하는 논의가 있었다."

유출된 청와대 문건의 핵심 내용이다. 이번 쟁점은 '그 내용이 사실이냐', 그리고 '어떻게 유출됐느냐'로 나뉜다. 청와대 측은 "문건 내용이 찌라시 수준으로 중요한 내용이 아니다. 다만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 행위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반면 문건 작성자인 박관천 경정, 그 지휘라인인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내용의 60% 이상"을 확신했다. 조 전 비서관 뒤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이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현재 검찰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추측이 난무하는 진실공방은 검찰 조사를 기다려봐야 한다.

하지만 이번 파문의 폭발성은 역대 정권과 다르다.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과정에서 끊이질 않았던 '그림자 실세' 논란의 주인공인 정윤회 씨가 등장했다. 임기 말이 아닌 국정 전반부에 등장한 비선 암투가 어떤 난맥상을 자초할지 예견하기 어렵다. 개헌론에 불을 지핀 상황에서 돌출한 실세 파동은 권력구도 개편에 대한 논의를 더욱 촉발시킬 가능성이 있다. 권력이 과도하게 독점된 상황 탓이라는데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야권은 예산국회에서 잃은 실점을 이번 비선 실세 파동에서 만회하려 벼르고 있다. 여권 내부에서도 이참에 대통령 비서실 기능 축소, 국정운영의 투명성을 제기하고 있다. 쉽게 덮일 사건이 아니다. 역대 정권의 비선은 정권 말 대부분 철창신세가 됐다.

서상현 기자 subo801@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