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이전에 우리 사회는 많은 부분에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진보와 보수' 등 이분법적 사고로 나누어 대결해 온 측면이 강하다. 이 같은 이데올로기로 인해 우리는 수많은 갈등을 겪어 왔으며 그러한 갈등들을 중재하는 동력이 약한 것도 엄연한 사실이었다. 지금의 사회현실도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어느 한 편에서 바라보는 다른 한쪽은 과연 어떻게 보일까? 단지 나와는 다른 세계라고 생각될 것인가 아니면 강한 거부감을 느낄까. 그래서 절대로 떨어져서는 안 될 나락으로 생각될지 아니면 반드시 올라가야 할 목표로 보일지. 그렇다면 '건축'이라는 사회는 과연 이러한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산업독재 시대 이후 도시를 채워 온 집들에 대한 많은 비판이 오랫동안 건축사회 속에 있어 왔다. 소위 집장사 집에서 성냥갑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집들은 건축을 이끌어가는 엘리트들에게는 항상 비판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건축은 그것이 지닌 사회경제적 속성상 대중성을 외면할 순 없었다. 집장사의 집들은 서민들의 보금자리였고 성냥갑 아파트들은 도시의 주거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었다.
이러한 건축적 현실에 대해 사명감을 가지고 노력한 시도들이 없는 것들은 아니었지만 상당 부분 현실과 거리를 둔 채 자본의 우월성과 추상적 개념들만을 강조하면서 고립된 섬 속에 갇혀 있었다. 새로운 밀레니엄에 대한 기대는 이미 가슴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이고 우리의 도시 우리의 건축은 여전히 지난 세기의 연장선 상에서 표류하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함께 고민하고 치열하게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세기말에 꿈꾸었던 도시의 풍경을 그리고 미래를 한 해의 끝자락에서 다시 생각해 본다.
도시는 살아있는 유기체이고, 도시를 구성하는 건물, 광장, 골목 등은 유기체를 구성하는 세포들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도시가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각각의 세포가 건강해야 함은 당연하다. 건강한 건축물 하나가 익숙한 주변의 풍경을 살리기도 하고 새로운 풍경의 거리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빡빡한 기존 도시의 조직 속에 스며들어 주변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는 건물과 도시의 팽창에 따라 만들어진 젊은 거리에 새롭게 풍경을 만들어가야 할 건물, 이 두 유형의 건물 모두 도시의 세포들이며 조직이다.
여기 두 개의 건강한 건물이 있다. 복현동 골목길 작은 땅에 서 있는 '모서리집'과 남대구IC 근처 10차로 광로변에 자리한 '아이스타 사옥'이 그러하다.
'모서리집'은 경북대 캠퍼스 동쪽 모서리 끝 부분에 위치하고 있어 그렇게 불린다. 캠퍼스의 주변 풍경은 '집장사집'들에 의해 오랫동안 지배되어 왔으며 그 익숙함에 대한 무감각은 병들어 가는 도시의 풍경에 대해 아무런 처방도 내놓지 못한 채 세기를 넘겨 왔다. 도시의 병든 풍경에 대한 지금까지의 많은 처방들은 과거의 모든 흔적들을 깡그리 도려내 버리고 그 자리에는 자본이 주도하는 기하학적 복제품을 이식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폭력적 처방과 달리 치열한 사명감과 실험정신으로 무장한 젊은 건축가 김건철은 기억을 소중히 여기는 공손한 자세로 거리에 접근하여 익숙한 도시풍경에 신선한 호흡을 불어 넣고 있다. 작은 땅이지만 집주인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여 구석구석 쓰임새가 충분하도록 치밀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익숙한 재료의 사용으로 기억에 대한 공유를 놓치지 않고 있다. 아울러 비움과 채움이 적절하게 구성된 세련된 매스와 타공판의 접이식 문이 주는 낯섦은 동네의 풍경에 조심스럽게 건네는 작은 선물처럼 보인다.
'아이스타 사옥'을 설계한 김기석 건축가의 처음 접근은 어떠하였을지 참으로 궁금하다. 휴먼스케일을 훌쩍 넘은 10차로 광로와 속을 숨긴 채 기분 나쁜 웃음으로 거리를 쳐다보고 있는 거울유리(mirror glass) 건물 등 비인간적인 풍경들로 가득 찬 거리에서 건축의 출발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분명, 인간과 도시에 대한 이해였으리라 믿는다. 꼬르뷔제(Corbuiser)는 'Urbanisme'이라는 책 서문에서 "도시! 그것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이해이며 자연에 대한 인간활동의 보호와 작업을 위한 기관이다"라고 했다.
그렇다! 도시의 풍경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과 도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그러한 이해는 양보를 통해서 출발한다. 아이스타 사옥은 도시의 풍경을 위해 과감하게 한 귀퉁이를 내어 주었다. 그리고 그 빈 곳에 자연을 심었다. 건축은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의 것이기도 하거니와 존재하는 이상 사회의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건축의 개체가 단지 그 개체만으로 존재하여서는 아니 된다. 그 건축을 통해 다른 건축을 보며 도시를 보아야 한다. 각각의 건축이 건강해야 하며 그 건축은 바로 건강하고 활력 넘치는 풍경의 바탕이 된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는 유기체인 도시의 메커니즘 속에서 생동감 있는 풍경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아이스타 사옥'처럼 자신의 일부분을 과감하게 내어줄 줄 알아야 한다.
또한 '모서리집'처럼 주변의 기억을 함께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건축을, 그리고 우리의 도시를 이분법적 사고에서 자유롭게 하고 서로 어울릴 수 있는 풍경으로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할 때 세상은 보다 새로워질 수 있다. 정치가 그리하지 못하고 경제가 그리하지 못하는 사회를 건축이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시기이다.
글/ 조극래 대구가톨릭대 건축학부 교수
모서리집/ 설계(김건철, 스마트건축 대표), 사진(문정식)
아이스타 사옥/ 설계(김기석, 기단건축 대표), 사진(기단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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