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사 프리즘] 가장<家長>이라는 이름

2014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12월을 정신없이 보내고, 오랜만에 여유롭게 주말 영화관을 찾았다. 요즘 관객몰이로 유명세를 떨치는 '국제시장'이 보고 싶었다. 예매 없이 매표소에 가니 모두 매진이다. 2시간 후에나 볼 수 있는 좌석을 겨우 구할 수 있었다. 영화의 인기를 실감했다.

영화 '국제시장'은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평생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었던 우리들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1950년 11월 흥남부두 피란민 속에서 생이별하면서,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이제는 네가 가장이다. 어머니와 동생들을 끝까지 지켜라"고 마지막 당부를 한다. 주인공 윤덕수(황정민 분)는 별안간 가장이 되었고, 백발이 되기까지 가족을 지키려는 사명감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아버지가 가장(家長)의 등짐인 양 어깨에 걸쳐주던 낡은 옷을 움켜쥐고 오열하는 윤덕수의 모습이 나온다. 죽을 만큼 고되고 힘겨웠지만, 언젠가 아버지가 돌아오셔서 '잘했다. 아들아'라는 한마디 칭찬과 격려를 해주실 거란 기다림으로 살았던 아들. 이제 자신이 백발이 되어 삶을 지탱하게 했던 힘, 그 아버지가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처음으로 목놓아 울어본다.

"아부지요, 저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그 대목에서 애써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리며,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마지막 부분이 떠올랐다.

'엄마는 웃지 않네. 울지도 않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강하게만 살아야 했고 베풀기만 해야 했던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했듯이, 가장이라는 이름 때문에 웃지도 울 수도 없었던 아버지에게도 한평생 아버지가 필요했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가슴에 사무치는 것은 아버지들의 소외감이었다. 가장의 책임감으로 살아왔고, 여전히 그 중압감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아버지, 아낌없이 퍼주던 아버지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겼고, 이제는 세상 사는 것에 바빠져 그에게 신경 쓸 겨를조차 없으며, 그의 희생에 대한 기억조차도 잊어버린, 이기적인 우리의 모습이 괴물처럼 엄습했다.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조차 끼이지 못한 채, 고리타분하고 노망 난 노인네 취급을 받으며 골방 구석에 처박혀, 커다란 가슴으로 안아주던 아버지의 든든한 품을 그리워하는 우리의 아버지들.

철없는 여동생이 궁핍한 형편은 아랑곳없이 오빠 자신도 해보지 못했던 근사한 혼수와 번듯한 결혼식을 올려주지 못한다고 원망하며 "오빠는 자기가 안 해서 못한 거고"라고 내뱉는다. 다리를 절며 숨 가쁘게 살아온 가장들에 대한 자식들의 냉담한 시각을 극명하게 대변하는 대사다.

고맙다는 말 듣고자 짊어진 짐은 아니겠지만, 이렇게 가슴을 후벼 파는 비수가 또 있을까. 그러나 가장이라는 존재는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더 해 주지 못해서 미안할 뿐이다. 짐의 무게만큼 가족들이 웃어준다면 보람으로 행복으로 느낄 뿐이다.

'내 등에 짐이 없었더라면 나는 겸손과 소박함의 기쁨을 몰랐을 것입니다. 내 등의 짐 때문에 나는 늘 나를 낮추고 소박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에게 기쁨을 전해준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정호승의 중에서

가장이라는 등짐의 무게는 지구보다도 무겁다. 그 짐을 메고 가는 우리는 무거워도 무겁다는 소리를 못 한다. 잠시 쉬는 틈에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까 내려놓지도 못한다. 인생의 종착역에 다다라야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다. 누구에게도 그 무게를 줄여달라고 조르지도 못한다. 혼자서 감당해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또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 어려워만 가는 세계경제 속에 우리의 새해도 녹록지만은 않다. 고되지 않은 삶은 없다. 삶이 팍팍해질수록 가장의 어깨가 무거워진다.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그분들을 위로하고, 감사를 전하며 새해를 맞아야겠다. 그들은 처진 어깨를 곧추세우고 또 한 해를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짐을 내려놓을 때가 될 때까지.

이석화/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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