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함께 떠나볼 빙벽장은 상주 채석장이다. 상주 화북에서 속리산 문장대 갈림길 앞을 지나 괴산 쪽으로 가다 보면 국도변에 '다보사'라는 사찰 표지판이 보인다. 그곳을 지나 500m쯤 국도를 따라 올라가면 '한성산업 상주 현장'이라는 표지판을 찾을 수 있다. 그곳에서 임도를 따라 30분가량 올라가면 길이 끝나는 곳에 채석장이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예전에 돌을 캐내고 운반하던 채석장이었기 때문에 빙벽을 하는 포인트까지 차가 드나들던 임도가 어렴풋이 남아있다. 지금은 임도 관리를 따로 하지 않아서 길이 패고 무너져 내려 차량으로는 조금밖에 올라가지 못한다. 배낭에 장비를 비롯한 준비물을 모두 챙겨서 약 30분 임도를 따라 걸어 올라간다.
예전에 채석 작업을 했던 공사 현장인 만큼 빙벽장 앞에는 석재를 야적하고 운반하던 탁 트인 넓은 공터가 있다. 텐트를 치거나 장비를 펼치기에 충분한 공간이 있어 편리하다. 상주 채석장은 모두 4단으로 돼 있다. 첫째 단은 8m, 둘째 단이 12m, 셋째와 넷째 단이 4~5m가량 된다. 자연적으로 생긴 폭포가 아니라 예전에 돌을 떼어 내던 곳 위로 계곡물이 흘러 얼어붙은 빙벽이라서 다른 빙벽장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바위 자체가 두부 모 썰 듯이 수직으로 썰려 있어 빙벽의 경사가 90도에 가까우며 표면이 매끈하다. 또 단에는 테라스가 있어 쉬어 갈 여지가 있는 점도 특이하다. 상주 채석장에서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구미와 대구 등의 지방에서 온 클라이머들을 자주 만날 수 있는데 등반 루트 자체가 좁은 관계로 서로 양보해가며 번갈아 등반을 하는 화목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필자 일행도 빙벽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텐트를 치고 장비를 착용한 후에 등반을 시작했다. 먼저 온 팀이 로프를 설치해 놓은 관계로 다른 팀의 로프를 이용해 등반했다. 보통은 자신의 로프를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요즘은 클라이머들이 많이 모이는 암벽장, 빙벽장의 경우 루트는 한정돼 있는데 사람은 많기 때문에 하나의 루트를 여러 팀이 함께 사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 루트에 여러 개의 로프를 설치할 수는 없으므로 양해를 구한 뒤 사용하곤 한다. 상주 채석장은 높이가 25m 정도로 낮은 편이지만 대부분의 구간이 수직이고, 고드름의 형태를 띠기 때문에 다른 곳에 비해 초보자들이 자세를 잡고 등반하기 다소 어려운 편이다. 등반을 하면서 고드름을 타고 올라가려면 몸의 중심을 잡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고드름을 피해서 등반하려면 크램폰(빙벽화 위에 신는 쇠로 된 발톱 모양의 장비. '아이젠'과 비슷한 개념이지만 훨씬 크고 날카롭다) 킥을 할 곳을 시야로 확인하기 어렵다.
또 평소에 팔다리 운동을 부지런히 하지 않고 올 경우 등반이 무척 힘들 수 있다. 경사가 완만할 경우는 힘들면 잠깐씩 서서 쉴 만한 공간이 있지만 수직의 빙벽에서는 한 단을 넘어 테라스가 나올 때까지 마땅히 쉴 만한 곳이 없이 오직 전진, 전진뿐이다. 떨어지든지 딛고 지나가든지 선택은 둘뿐이다. 물론 한 단이 10m 안팎이라서 거대한 수직의 자연폭포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평소에 운동을 게을리한 클라이머들은 애를 먹는 경우도 많다.
채석장은 맨 처음 등반자가 올라가서 로프를 설치할 때만 선등으로 올라가고, 뒤에 등반하는 대부분 사람들은 정상에 로프를 통과시킨 채 빙벽 아래에서 확보를 보는 '탑로핑' 방식으로 등반한다. 탑로핑 방식은 만약 등반자가 미끄러지거나 얼음이 떨어져 추락해도 밑에서 바로 로프를 잡아주므로 추락 거리가 길어 봐야 2~3m 정도다. 낙빙만 조심한다면 추락에 의한 부상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등반을 할 때에는 하네스라고 불리는 안전벨트에 로프를 직접 묶은 후 양손에는 바일(낫처럼 생긴 얼음도끼), 양발에는 크램폰, 머리에는 헬멧을 착용하고 등반을 한다. 빙벽등반을 할 때에는 이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는 경우가 없다.
빙벽등반은 맨손으로 벽을 오르는 암벽등반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암벽등반은 '정해진 홀드'(손으로 잡거나 발로 디딜 수 있을 만한 돌출물, 또는 홈)를 힘과 기술을 이용해서 어떻게 자신에게 맞게 이용하느냐에 달렸다. 반면 빙벽등반은 대회를 제외하면 정해진 홀드가 없다. 자신의 키와 기술, 스타일에 맞게 얼음을 찍어내고 발로 차서 새로운 홈의 홀드를 만든다. 그다음 그곳에 기구를 걸고, 쇠로 된 발톱으로 딛고 서서 진행한다. 다른 사람이 찍어 놓은 홈을 이용하든지 원래 움푹한 곳을 찾든지 그것 또한 자기 마음대로다. 한정된 홀드를 잡고 디디는 암벽등반과는 달리 같은 루트를 열 번 올라가도 열 번 모두 다른 곳을 찍고 다른 곳을 디딜 수 있는 것이 빙벽등반인 것이다.
때 하나 묻지 않은 하얀 수직의 빙벽을 나만의 방식으로 찍어 오르고 힘들게 오른 정상에서 바라보는 아래쪽의 탁 트인 경치는 클라이머들만이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자 특권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김재민(대구산악연맹 일반등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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