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복고·부성애 스크린서 通했다

흥행예고-허삼관, 흥행돌풍-국제시장

◆허삼관

#중국 소설 '허삼관 매혈기' 원작…하정우 각색·연출·주연 '1인 3역' 핏줄 다른 아들 키운 가장 '부성애'

배우 하정우가 연출하고 주연을 맡은 휴먼 코미디 드라마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완벽한 변신 연기를 보여주었던 하정우의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실질적으로 보여줄 시험대가 될 영화다. 그는 2013년에 비행기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코믹한 상황을 그려낸 '롤러코스터'로 감독 데뷔를 했다. 영화 '허삼관'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 중국 위화의 원작 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한국 정서에 맞게 각색한 작품이다. 하정우는 각색, 연출, 주연 등 1인 3역을 하며 영화에 매진했다. 결론적으로 이번 작품은 성공적으로 보인다.

전쟁이 막 끝난 1953년에서부터 11년을 훌쩍 넘긴 1964년, 두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모두가 가난하고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던 그때, 지방의 소도시에 자리 잡고 살아가는 한 가족의 기구한 이야기를 그려낸다. 천만 영화가 된 '국제시장'과 다음 주에 개봉할 '강남1970'(유하 연출)과 함께 '허삼관'은 가까운 과거시대를 그리는 복고영화이며, 아버지의 활약에 초점을 두는 부성애 가족영화다. 웃음과 눈물, 콧물은 필수요소다.

'내가 뿌린 씨앗만 내가 거둔다'는 심상치 않은 한 줄 카피로 많은 것이 설명된다. 절세미녀 아내와 잘 깎아놓은 밤톨 같은 아들 셋을 부양하는 호쾌한 남자 허삼관에게 찾아온 일생일대의 위기는 많은 남자들이 어렴풋이 가졌을, 보편적인 근심을 화두로 삼는다.

당당함을 무기로 동네 최고의 미녀를 얻은 허삼관은 제일 믿음직스러운 첫째 아들이 커가면서 점점 아내의 결혼 전 애인 하소영을 닮아가자 노심초사한다. 하소영은 동네에서 제일가는 부자인 반면, 허삼관 자신은 급전이 필요할 때면 피를 팔아 연명해야 하는 처지라 더욱 부아가 난다. 영화는 대범한 듯 보이지만 핏줄 앞에서는 소심하고 쩨쩨한 남자가 가족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그린다. 스케일이 크거나 요란하게 사건이 벌어지면서 쾌감을 주지는 않는다. 일상에서 우러나는 소소한 재미가 크며, 무엇보다도 하지원이 연기하는 당당한 여성 캐릭터가 우리에게 큰 즐거움을 준다. 이경영, 김영애, 성동일, 정만식, 조진웅, 장광, 김성균, 윤은혜 등 화려한 조연들의 앙상블도 훌륭하다. 우리에게도 훌륭한 감독으로 변신한 연기자가 생긴 것 같다.

◆국제시장

#연기파 배우들이 만든 현대사…보수·진보 논객들 이념 논쟁 타고 한국영화 11번째 '천만 관객' 돌파

지난 화요일 '국제시장'이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한국영화 사상 11번째이며, 윤제균 감독에게는 '해운대'에 이은 두 번째 천만 영화다. 윤제균 감독은 최초로 쌍천만 감독이 되었다. 이 정도 기세라면 무난히 천이백만 고지까지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영화가 처음 시사회에서 공개되었을 때 천만 관객은 힘들 것으로 많은 이들이 예측했다.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연기파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웃음, 눈물, 감동이 무난하게 펼쳐지지만 느낌상 폭발력까지는 보여주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고, 개봉 후의 흥행 속도가 이를 증명했다. 그러던 것이 몇 주가 지난 후, 논객 사이에 영화에 대한 이념논쟁이 갑작스레 펼쳐졌고, 대통령을 위시한 정치인들의 한마디 언급이 논쟁에 불을 붙인 모양새가 되었다. 영화를 둘러싼 논쟁에는 지역갈등, 세대갈등, 이념갈등으로 찢긴 우리 시대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보수 세력은 영화를 '산업화 세대의 애국심을 표현한 영화'로 적극 옹호하고, 진보논객은 '시대적 성찰이 없는 영화'로 비판했다.

영화는 분명히 재미있는 오락영화이고, 감독은 이념논쟁이 심각한 한국사회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정치적 이슈를 의도적으로 빼버렸다(물론 이 또한 정치적 선택으로 비치지만). 그런 만큼 헐거운 영화가 되어버렸지만, 지역갈등을 넘어서는 에피소드나 외국인노동자 옹호 장면, 노동자 개인의 고군분투, 힘없는 소시민의 유신 순응에 대한 풍자 등의 장점이 언급되지 못하며, 그저 양진영의 소모적인 논쟁으로 귀결되어 버렸다. 영화는 노이즈 마케팅이 홍보에 매우 효과적이라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것이다.

사회가 통제적이고 딱딱하며, 강한 국가를 강조하는 식으로 남성성이 두드러질 때면 가족애, 고향, 눈물 등의 여성성의 기호들로 위기를 돌파하고자 하는 행태를 보인다. 신파 가족드라마 '국제시장'의 흥행 돌풍이 지금 2015년 대한민국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심상치 않다. 앞으로 낭만화된 복고, 가족애, 눈물, 신파, 모성애, 부성애를 키워드로 하는 영화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고, 이는 현재 우리 사회를 진단케 하는 하나의 흥미로운 바로미터이다.

정민아<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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