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세정의 대구, 여성을 이야기하다] 최초 여성비행사 권기옥

독립운동 중 '운남항공학교' 1기로 입학…비행시간 1,300시간

▲이상화(왼쪽), 권기옥(가운데), 이상정의 모습. 정혜주 작가 제공
▲이상화(왼쪽), 권기옥(가운데), 이상정의 모습. 정혜주 작가 제공

대구 중구 계산동 2가 90번지. 이상정 장군 고택 앞에 한 사진이 걸려 있다. 시인 이상화, 이상정 장군과 함께 나란히 어깨동무를 한 이 여성은 누구일까?

바로 우리나라 최초 여성비행사 권기옥(1901~1988)이다. 이상정 장군의 부인이라고 소개되고 있는데, 이상정 장군은 이상화의 친형이자 임시정부 의정원 경상도 대표였다. 또 대구 최초의 서양화가로 기록되었으며 서예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그녀는 평양 태생으로 가난한 집의 반갑지 않은 딸로 태어났다. 갓난아기를 죽으라고 엎어놓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식민지 시대, 그것도 가난한 집에 여성으로 태어난 권기옥은 오로지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에 의지해 공부에 매진했다. 그리고 숭현소학교 시절 항일민족의식이 싹트고 1919년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고문수사를 받기도 하는 등 갖은 고초를 겪었지만 권기옥은 1920년 여자전도대 '브라스밴드단'을 조직, 독립운동 연락책으로 나서 전국을 순회했다. 그 와중에 대구에서는 강연 도중 독립을 선동하는 내용이 있어 경찰서에 불려가기도 했고, 체포령이 내려지자 1920년 중국 상해로 망명했다.

그녀는 상해에서 다양한 독립운동가를 만나고, 방학 때는 선교사 집에서 집안일을 해주며 영어를 배웠다. 그러던 중 독립운동의 한 방편으로 비행사가 되기로 한 권기옥은 운남항공학교 1기로 입학해 남자들과 똑같이 혹독한 훈련을 받고 1925년 2월 항공학교를 졸업했다. 중일전쟁과 독립운동을 통합하기 위해 노력했던 권기옥은 1927년 3월에는 중국 국민혁명군 동로군 항공사령부 비행원으로 임명돼 북벌전쟁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권기옥의 비행시간은 1천300시간에 이른다. 권기옥은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사' 서왈보의 소개로 1927년 이상정을 만나 혼례를 치르고 북경에서 신혼생활을 보낸다. 권기옥은 성격이 호탕했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권기옥은 정혜주 작가에 의해 본격적으로 발굴되었다. 정 작가가 권기옥을 만나게 된 이유가 흥미롭다. 어린 딸에게 여성 위인전을 읽히고 싶어 찾았지만 우리나라 여성 위인, 그것도 근대의 여성에 대해 조명한 동화책은 거의 없었다. 이때 근대 여성에 대한 관심이 싹텄고, 2002년 권기옥에 대한 연구가 시작됐다. 그는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 권기옥'에 꽂혀 10년 이상 권기옥의 발자취를 찾아 한국은 물론 중국을 헤맸다. 그리고 올해 광복절에 맞춰 권기옥의 평전이 발간될 예정이다. 정 작가의 딸은 이제 대학생이 되었지만, 이 책은 앞으로 수많은 딸들에게 큰 감명을 줄 것이다.

권기옥의 고향이 대구는 아니지만, 우리에게 이처럼 기개 넘치는 여성 선배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권기옥을 통해 대구의 이야기는 한층 풍성해지고 있다.

<대구여성가족재단 책임연구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