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슬람 극단주의 광기 공포와 슬픔의 현장] <6>또 다른 적 '터키'

쿠르드민병대 테러단체 규정…對 IS 저항막고 탄압

탱크와 장갑차로 수르츠시를 완전히 점령하면서 쿠르드인들을 공포에 몰아넣고 있는 터키군.
탱크와 장갑차로 수르츠시를 완전히 점령하면서 쿠르드인들을 공포에 몰아넣고 있는 터키군.

터키의 국경도시 수르츠에서 10㎞ 떨어져 시리아와 접한 국경마을 '무르타르'. 이곳의 이장 파미 알티렐(52)은 필자에게 자신이 직접 목격한 장면을 얘기했다. 지난해 10월 중순쯤 마을 근처의 국경선 부근에서 "터키 군인들이 이슬람국가(IS) 대원들에게 실탄을 건네주고 악수하고 헤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이장만이 아니라 수많은 마을 사람들이 터키군과 IS 대원들이 접촉하고 무언가 주고받는 광경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이 같은 장면이 카메라에 찍혀 유튜브(Youtube)에 올라오기도 했다.

그리고 작년 10월 20일경에는 필자가 머물던 수르츠시에서 터키의 IS에 대한 지원 의혹을 캐던 미국인 TV 리포터 세레나 심(30)이 의문의 교통사고로 죽음을 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외국 언론인들이 초긴장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세레나는 죽기 며칠 전 이미 터키 정보부가 그녀를 벼르고 있다는 불안감을 내비쳤다. 사실 그녀는 IS의 전투원들이 세계식량기구나 다른 NGO 트럭들을 이용해 터키에서 시리아로 넘나드는 영상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의회 부의장인 클로디아 로쓰는 지난 12월 초 공개적으로 터키 정부를 강력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터키가 이스탄불에 IS의 군사훈련 캠프를 허용하고, 터키 영토를 통해 시리아로 무기공급을 허락했고, 터키를 통해 IS가 석유를 판매할 수 있게 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공개적으로 터키 정부를 궁지로 몰았다. 물론 터키 정부는 이를 즉각적으로 반박했지만, 국제사회의 여론은 이미 돌아선 상태였다.

IS가 발흥해 예즈디 쿠르드인들을 잔인하게 학살하고 시리아의 쿠르드 지역과 코바니를 침공하자, 나토와 서방세계는 나토 회원국인 터키에 IS와 전투를 벌일 것을 종용해왔다. 10월 초에는 터키의회에서조차 IS에 맞서 전투에 나선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럼에도 터키 정부는 코바니와 맞닿은 국경선에 탱크만 진주시킨 채 묵묵부답으로 버텨왔다. 그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어가 쿠르드 민병대를 지원하려는 쿠르드인들까지도 물리적으로 봉쇄해왔다.

터키의 IS를 묵인하는 듯한 태도로 인해 지난해 10월 초 터키 전역에서는 쿠르드 민족이 대대적으로 봉기하기에 이르렀다. 시위로 인해 38명의 쿠르드인이 목숨을 잃었고 60여 명이 심하게 부상당하는 사태를 겪었다. 당시의 사태는 터키가 IS의 탄생과 성장을 지원해왔고, 심지어는 IS를 통해 쿠르드 민족을 말살하려 한다는 의혹이 쿠르드 민족 사이에 광범위하게 확산됐던 상황에서 일어났다.

문제는 세계가 IS를 인류 공동의 적으로 규정했고 또 직접적인 타격에도 들어갔지만, 터키 정부는 IS의 반인륜적인 만행을 단 한 번도 비판한 적도 없고 행동에 나선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터키가 적이라고 간주하는 단체는 IS가 아니라 IS에 맞서 코바니에서 싸우는 쿠르드 민병대이다. 터키에 IS는 적인 쿠르드 민병대와 맞서 싸우는 무장한 단체 정도로 간주될 뿐이다. 심지어는 IS가 쿠르드 민병대를 완전히 제압해 코바니를 점령하기를 바라는 듯한 언급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 입에서 수차례 나왔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IS와 전투를 벌이는 쿠르드 민병대는 쿠르드노동당(PKK)에 연관된 조직으로 IS와 같은 테러리스트 단체이기에 절대로 지원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에르도안 정부의 사보타지 정책으로 인해 코바니에서 IS에 맞서 싸우는 쿠르드 민병대는 한동안 철저히 고립된 상태에서 외로운 싸움을 해냈어야 했다.

지금까지 터키는 PKK을 테러리스트 단체에 등재해 놓고서 쿠르드 민족을 탄압하는 데 백분 활용해왔다. 쿠르드 민족의 인권문제나 문화적 여러 권리를 요구하는 정치가들이나 법률가나 언론인들, 사회활동가들을 대부분 PKK와 연관시켜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장기형을 선고해왔다. 지금은 터키 의회 의원인 쿠르드인 케말 악타쉬는 PKK에 연관됐다는 이유로 1980년에 구속, 27년이나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6년 전에는 에톰 샤인 전 수르츠 시장이 2선 시장으로 재직 중일 때 갑자기 PKK와 연관됐다는 이유로 체포돼 5년 동안 교도소 생활을 해야 했다. 이 때문에 독일 의회 부의장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뜻있는 정치인들은 현재 PKK를 테러리스트 단체 리스트에서 제거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IS가 코바니를 침공한 지 두 달이 지나면서 터키의 IS에 대한 지원 문제는 확실한 물증을 남겼다. 2014년 11월 30일 IS가 터키의 국경을 넘어 쿠르드 민병대의 진지에 자살폭탄테러를 감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터키 측이 IS를 실질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확신을 굳히게 했다. 쥐새끼 한 마리도 코바니로 들여보내지 않을 정도로 국경을 철통같이 수비한다던 터키의 국경선을 넘은 IS 대원이 쿠르드 진지를 공격했기 때문이다. 쿠르드 민병대 측에서는 "다른 세 방향은 쿠르드 민병대가 완전히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터키 국경을 통하지 않고는 그 방향에서의 공격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쿠르드 민병대의 끈질긴 저항과 미군의 공습지원으로 4개월 만에 IS가 코바니에서 후퇴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쿠르드 민족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인들에게는 기쁜 소식이지만, 터키에는 부고장과도 같은 비보일 수밖에 없다. IS가 발흥하면서 두 가지 문제가 새롭게 제기됐다. 하나는 터키의 부정적인 실체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세계적으로 고립화의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IS에 맞서 외롭게 싸워온 쿠르드 민족의 존재가 전 세계에 알려졌다는 점이다. 시간이 갈수록 터키는 국제사회에서 더욱 고립될 것이며 쿠르드 민족의 분리운동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하영식 객원기자(국제분쟁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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