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역을 치른다'는 말이 있다. 몹시 애를 먹거나 어려움을 겪을 때 쓰는 관용구다. 백신이 없던 시절, 홍역은 누구나 한 번쯤은 치러야 하는 병이었다. '홍역은 평생에 안 걸리면 무덤에서라도 앓는다'는 속담도 있다. 속된 말로 '제구실'(자기의 의무), '제 것'(자기 소유)이라 불린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가벼이 여길 병은 아니었다. 조선시대 홍역은 천연두, 콜레라와 함께 3대 전염병에 든다. 1707년 숙종 33년에는 평안도에 홍역이 돌아 사망자가 1만 수천 인에 이르렀다. 이듬해 2월엔 삼남지방에서 이 병으로 죽은 자가 1만 인이라는 기록이 전한다. '홍역귀'란 귀신이 생길 정도로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국민이 홍역 대유행의 공포에서 벗어난 것은 온전히 예방 백신 덕분이었다. 백신은 1962년 국내에 처음 소개되고 1965년부터 대대적인 예방접종에 들어갔다. 홍역은 1차 접종으로 95%, 2차 접종으로 99%가 면역력을 갖게 된다.
정부 차원의 예방 접종사업이 진행되면서 홍역은 빠른 속도로 진정됐다. 우리나라에선 2000년 2명, 2001년 5명의 홍역으로 인한 사망자가 나온 것이 마지막이었다. 이후 세계 보건기구는 우리나라를 모범 홍역퇴치 국가 명단에 올렸다. 공포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우리나라에서 홍역은 여전히 제2종 법정전염병이다. 아이들은 꼬박꼬박 홍역 예방 접종을 하여야 한다.
미국에서 홍역 예방 접종이 때아닌 논란을 빚고 있다. 지난해 말 LA디즈니랜드를 진앙지로 발생한 홍역이 올 들어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어서다. 캘리포니아에서 발병한 홍역은 다른 주로 퍼져 나가 현재 14개 주에 걸쳐 최소 102건의 발생사례가 보고됐다. 논쟁은 홍역을 앓게 된 아이들이 대부분 백신을 맞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불붙고 있다. 아직 92%의 부모는 백신을 맞히고 있다. 하지만 일부 부모는 홍역 백신이 어린아이에게 화학물질을 주입하는 것이고, 이 화학물질이 자폐증을 유발할 수 있다며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실정이다.
미국 보건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수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백신과 자폐증 사이에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연구결과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전문의들은 예방 백신이 홍역 확산을 막을 최선이라며 아이에게 백신을 맞히라고 권유하고 있다.
근거 없는 논란에 미국이 안 겪어도 될 홍역을 치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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