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꿈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보물찾기처럼 스스로 찾아 나서는 것
영화 시네마천국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색이 짙어지는 이탈리아의 궁벽한 마을극장이 무대다. 그 극장은 구질구질한 가난으로 남루한 소년 토토에게 유일한 파라다이소(Paradaiso), 즉 천국이다. 챠르르르… 활동사진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컴컴한 어둠을 뚫고 스크린에 쏘아지는 몽환적인 빛에 중독된 듯 빠져드는 영화천국.
6'25전쟁 때 월북으로 아버지가 부재(不在)한 나와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토토는 동병상련이었다. 토토의 꿈은 영화감독. 나는 영화배우였다.
중학교를 자퇴한 후 당시 청소년으로는 무척 엉뚱한 딴짓(?)을 했다. 또래들이 교과서를 보고 있을 때 난 영화 속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보고 있다 폼페이로 갔다. 다음날은 브로드웨이를 거닐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오르고 하버드대학 캠퍼스로 향했다. 베르사유 궁전, 아마존 정글, 아프리카의 비경 등 인종, 국경, 언어도 아랑곳없는 나는 자유인이었다.
학력의 스펙은 볼품없지만 상상과 공상의 스펙트럼은 호기심 천국으로 가는 길이었다. 삶은 오묘하기도 해서 어느 한 길만이 정답은 아니다.
졸업과 입학을 앞두고 갈등과 고뇌로 힘들어하는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있다면 이런 이야기도 해주고 싶다.
이맘때쯤 간혹 기억나는 일이다. 대학 학력 증명서가 필요해서 중앙대학교(내가 다니던 서라벌예술대학이 중대로 통합되었다) 교무처에 가 서류 신청을 했다. 마침 나를 알아본 여직원이 열성팬이라며 무척 반겨주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잠시 후 서류를 건네주면서 측은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선생님 같은 분이 왜 학교를 1년만 다녔느냐, 왜 더 다니지 않았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물론 아쉽고 딱하기에 하는 말이었는데 내겐 아프게 들렸다.
엉거주춤 빼앗듯이 서류를 받아 쥐고 돌아서는데 눈물이 글썽거렸다. 얼른 나무로 가려진 벤치로 뛰어가 앉는 사이 나는 흐느낌을 지나 엉엉 소리까지 내며 울고 있었다. 불우함에 대한 나의 분노가 상처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대학 1년 수료뿐인 나의 학력은 초라하다. 빛나는 졸업장은 초등학교 중학교 두 장뿐이다. 아! 2010년이었나, 40여 년 만에 덕수상업고등학교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늦깎이 졸업에 대한 감회를 한마디 하라는데 목만 메었다. 명문이었던 그 상고에 입학하던 날도 그랬다. 꿈의 직장이라던 은행에 합격한 것처럼 감격스러웠다. 그러나 상고에서는 주산 점수가 대단히 중요한데 주판 놓는 검지를 다쳐 점수가 엉망이었고 등록금 마련도 버거워 또 자퇴했다.
행복의 보따리엔 불행도 조금 들어 있고 불행 보따리엔 행복도 들어 있다더니…. 당시 동기 친구들이 학교에 내 명예졸업장을 건의했는데 잘 받아들여져 정말 빛나는 졸업장을 받았다.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포기라고 한다.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희망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신문배달, 사환, 가정교사를 하면서 틈만 나면 토토처럼 극장으로 달려갔다. 당연히 '학생 입장불가'였지만 발칙하게 들이댔다. 어른 옷에 빵떡모자를 눌러쓰고 노인걸음으로 들어갔다.
인도에는 아직도 불가촉천민층이 존재한다. 옛날에는 말 그대로 다른 계층과는 접촉조차 할 수 없는 그들이 외출할 때는 허리 뒤춤에 빗자루를 묶어야 했다. 자신들이 밟아 더러워진 발자국을 스스로 깨끗이 지워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지금은 그런 학대는 받지 않지만 차별은 남아 있다.
나렌트라 자다브는 그런 천민 출신인데 인도 명문 푸네대학 총장이 되었다. 기적이었다. 기적은 신이 만든 것이 아니고 그의 아버지가 만든 것이었다. 교육만이 자식들의 미래와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한 그는 재봉틀 바늘에 손가락이 잘릴 만큼 끔찍한 부상을 당하면서도 다음날 일터로 나갔다. 자다브 총장의 자서전 '신(神)도 버린 사람들'에는 그의 아버지의 통한과 통곡이 눈물겹게 담겨 있다.
미생으로서 힘겨워하는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찾아내자고 말해주고 싶다. 행복과 꿈은 술래잡기 보물찾기처럼 찾아내야 하는 것이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신도 함부로 버릴 수 없는 존재들이니까 말이다.
성우·서울예술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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