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문재인, 대통령도 여론조사로 뽑자고 하라

헌법이 부여한 권한과 책임 포기, 여론 역풍 피하려는 치졸한 꼼수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 문제를 여야 공동의 여론조사로 처리하자고 청와대와 새누리당에 제안했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정치쇼'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첫 번째가 '신의 상실'이다. 새정치연합은 실랑이 끝에 이 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를 위한 국회 본회의를 오는 16일로 연기하기로 12일 새누리당과 합의했다. 문 대표는 시쳇말로 합의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약속을 깬 것이다. 시정(市井)의 필부(匹夫)도 이렇게는 하지 않는다.

국민이 우리 정치권에 요구하는 덕목 중 가장 시급한 것이 타협의 정치다. 진영논리와 대결의 정치는 정치에 대한 염증을 불러왔고 이는 다시 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져 정치의 타락과 퇴보를 낳은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 한가운데에는 타협 정신의 실종이 자리하고 있다.

문 대표의 약속 위반은 이런 부끄러운 현실을 고착화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이렇게 합의를 깨면 앞으로 새누리당이 약속을 깨려 할 때 이를 막을 명분이 없다. 타협의 정치는 작은 데서 출발한다. 한 번 약속했으면 작은 것이라도 반드시 지키는 것이 타협 정치의 요체다. 문 대표는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본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두 번째로 이번 제안은 매우 치졸하고 정략적이며 편의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꼼수'라는 것이다. 헌법은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여야가 합의를 하든 표결을 하든 임명동의안은 반드시 국회에서 처리해야 한다. 문 대표의 제안은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권한과 책임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으로 헌법 위반이란 얘기다. 문 대표는 여론조사 제안의 이유로 "우리의 주장을 야당의 정치공세로 여긴다면"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대통령 선거에서 상대 당 후보에 대한 공격을 정치공세라고 할 경우 대통령도 여론조사로 뽑자고 할 것인가?

국무총리의 임명에 관한 헌법 규정은 초등학생도 안다. 그러니 명색이 제1야당인 대표가 몰랐을리 없다. 이는 문 대표의 제안이 정치적인 계산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측게 한다. 안대희, 문창극에 이어 이 후보자까지 낙마시킬 경우 국정의 발목만 잡는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음을 걱정했다는 얘기다. 더구나 이 후보자 지명 직후 '호남총리론'을 입에 올렸다 사과까지 했던 문 대표다. 당연히 충청 민심의 역풍을 우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당당히 맞서 여론을 설득하고 자신의 결정을 이해시키려 노력하는 것이 제1야당이 지향해야 할 자세다. 그런 점에서 문 대표의 제안은 '꼼수'에서 더도 덜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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