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고우영이나 봐야지!

1969년 서울생. 서울고등음악원. 대구MBC라디오
1969년 서울생. 서울고등음악원. 대구MBC라디오 '권오성의 귀를 기울이면' 진행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만화방을 들락거렸으니 내 만화 편력도 꽤 내세울 만하다. 북한에서 피란 내려와 대구에 자리 잡은 만화방 할아버지는 매일 화투나 책받침을 어른 손톱만 하게 잘랐는데 10원을 내면 조각 6개를 받을 수 있었다. 일종의 만화방 머니였던 셈이다. 입구에 있는 철제 책상 위에 돈을 내고 쌓여 있는 불량 식품을 억지로 외면한 채 몸을 돌리면 천국이 열린다.

시간이 지나거나 완결된 만화는 철심으로 묶여 서가에 꽂혀 있지만 신간은 대개 미닫이문 유리창에 자리한다. 그 옆으로 야릇한 선데이서울이나 명랑 같은 잡지가 있었는데 이건 삼촌 심부름으로 빌려올 때나 손댈 수 있는 영역이다. 내 영역에 있었던 윤승운의 과 길창덕의 은 쥘 베른보다 재미있었고 김기백, 신문수는 멘토나 다름없었다. 김삼의 을 보기 위해 학습지를 받아봤고 를 보려고 매일 껌 한 통을 샀으니 어지간히 만화에 빠져 있긴 했다.

주로 어린이 신문이나 잡지에 연재되던 만화는 연재가 끝나면 단행본으로 발간된다. 이 가운데 '클로버문고'(정확히는 새소년 클로버문고)는 단연 인기였다. '클로버문고'는 을 시작으로 , 같은 걸작들을 발간했고 막 나온 신간을 보는 순서는 동네 권력 서열과 같았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클로버문고에서 발행된 상당수의 만화는 원작이 일본 작품인 해적판이 많았다.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기 전이었고 마징가Z가 한국 로봇인 줄 알았던 시기니 그러려니 하자. 그래도 황수진이나 정영숙 같은 만화가가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는 배신감이 든 건 어쩔 수 없다. 또 만화에 검은 칠이 되어 있거나 아예 몇 컷에 그림이 없는 경우도 있었는데 나중에 원작을 보고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요즘 TV드라마의 막장 모습 정도를 상상하면 된다.

동네 만화방에서 볼 수 없는 아이템도 있었는데 고우영이나 박수동의 작품이 많았다. 두 사람의 작품은 성인만화로 분류되어 있었다. 어찌어찌 만화방 주인의 눈치를 살피며 난생처음 고우영의 작품을 빼들었는데 재미가 없다. 글자도 많고 그림도 재미없었다. 이걸 어른들은 왜 볼까라고 생각했고 일탈이 남긴 후회로 기분만 나빴다. 그 후로 고우영은 스포츠 신문에서나 가끔 만나는 이름이었다.

고우영 만화를 다시 보게 된 건 1990년대 중반이었다. 대중문화 담론이 한창이던 시절, 만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등장했다. 불량 매체의 대명사였던 만화를 대중오락을 이끈 중심 매체로 보자는 논의가 있었고 스포츠 신문 창간 붐을 타고 만화는 다시 한 번 좋은 시절을 맞는 듯했다. 이현세나 허영만, 이재학 등의 스타 작가들은 대중적인 스타로 떠올랐고 매체 간 경쟁도 치열했다. 하지만 단행본 시장은 달랐다. 도서대여점은 일본 만화 단행본이 잠식하고 있었고 이나 같은 일본 만화는 국민 만화 반열에 오를 정도의 인기였다. 연재 만화로 명맥을 유지하던 한국 만화는 결국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낙오한다.

이 시기 고우영은 새로운 도전을 한다. 그간의 만화를 재편집한 을 발간하고 중국 증선지(曾先之)가 편찬한 을 만화로 옮긴 십팔사략을 단행본으로 기획한다. 와 , 등이 다시 정리되어 발간되고 , 같은 작품도 새로운 모습으로 발간된다. 고우영 특유의 해학과 만화에 대한 사회적 탄압으로 드러내지 못한 정서가 오롯이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설 연휴가 길다. 라디오 방송 2시간 진행하고 나면 딱히 할 일도 없다. 긴 연휴동안 고우영이 해석한 고전이나 다시 펴들어야겠다. 이건 정말 흥미로운 시간이 될 것이다.

권오성/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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