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병준의 대담] 문정인 연세대 교수

"남북관계에도 '골든타임'…박 대통령 실천이 중요"

문정인 교수, 그는 동북아문제와 통일문제에 있어 최고의 학자이자 실천적 지성이다. 지금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그랬다.

그를 만날 때마다 그의 분명한 주장과 풍부한 설명에 놀란다. "한미동맹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북한이 핵을 가지게 된 것은 우리의 '퍼주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의 일방적 압박 때문이다." 소위 진보진영에서 좋아할 만한 주장들이다.

그러나 이건 또 어떤가? "제주 해군기지는 평화를 위해 필요하다." "힘을 가져야 우리를 지키고 동북아의 평화도 지킬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진영논리로는 그의 생각과 주장을 다 담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의 이러한 생각과 주장은 햇볕정책의 뿌리가 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동북아구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제1차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 모두 참여한 배경이기도 하다. 노무현정부에서는 장관급인 동북아시대위원장을 지냈으며, 박근혜정부에서는 대통령이 위원장인 통일준비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올해 교수로서 정년을 맞는, 그러나 여전히 열정이 넘치는 '젊은' 그에게 어떻게 하면 긴장이 사라지지 않는 이 동북아지역에서 평화롭게 잘 살 수 있는지를 물었다.

▶긴장의 동북아: 제2의 냉전구도?

김병준: 먼저 다른 걸 하나 물어보자. IS, 즉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가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일본인 인질까지 죽이고 하는데 우리는 괜찮은 건가?

문정인: 정해진 지리적 근거지 없이 초국가적 테러행위를 하는 알 카에다와 달리 IS는 이라크 서북부와 시리아 동부 쪽에 근거지를 가지고 있다. 솔직히 그 지역에 가지 않으면 된다.

김병준: 우리나라나 우리 국민을 목표로 삼을 이유가 없다는 말인가?

문정인: 일본의 아베 총리같이 하지 않으면 된다. 두 명의 인질이 잡혀 있는데도 카이로에 가서 적극적 평화주의 이야기를 하며 IS 격퇴를 돕겠다고 했다. 돈도 2억달러를 지원한다고 했다. 우리 대통령이 그러지 않으면 된다.

김병준: 오늘 이야기로 돌아와서, 동북아 지역이 걱정이다. 늘 긴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 같은 경우 과거 있었던 갈등과 분쟁을 넘어 공동의 번영을 향해 가고 있다. 아세안을 중심으로 한 동남아 지역도 그렇다. 그런데 왜 동북아지역만 이런지 참 답답하다.

문정인: 유럽만 해도 2차대전 이후 두 개의 세력권, 즉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 그룹과 소련이 주도하는 바르샤바 조약기구 국가 그룹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이 둘을 주도하는 미국과 소련 사이에 긴장완화가 추진되고, 이를 바탕으로 두 세력권 사이에 상호 신뢰가 높아지면서 통합이 이루어졌다. 구도가 비교적 간단했다는 말이다.

김병준: 동북아지역은 그렇지 못하다?

문정인: 그렇다. 동북아지역은 지정학적 면에서, 또 거시안보정치적 역학관계에서 유럽과 다르다. 크게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 중심의 세력권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우선 이 세력권 사이의 합의나 신뢰구축이 쉽지 않다. 이를테면 중국은 커지는 국력만큼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갈 텐데 미국이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겠나.

김병준: 영토 문제와 역사 문제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문정인: 그래서 각 세력권 내의 사정도 복잡하다. 당장에 미국 세력권에 속한 우리와 일본만 해도 같이 가기가 힘이 든다. 영토 문제와 역사 문제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과거 조공체제 아래에서는 중국이 큰형, 우리가 가운데, 그리고 일본이 막내였다. 그런데 이 막내가 힘을 키우더니 형들을 괴롭혔다. 유교 질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형들 입장에서는 엄청난 충격이자 쉽게 사라질 수 없는 집단 기억이기도 하다. 여기에 동생은 사과도 제대로 안 한다. 오히려 독도처럼 힘으로 빼앗아 간 땅을 자기 땅이라 우기거나 센카쿠(조어도)처럼 점유하고 있다.

김병준: 다시 한 번 딱하다. 한'중'일 3국을 합치면 국내총생산으로 전 세계의 20%에 달하고 교역량 또한 20%에 가깝다. 이런 지역이 갈등과 긴장으로 글로벌 사회의 중심이 되지 못하고 있다.

문정인: 오히려 1990년대 초에 끝났던 냉전구도가 되살아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미국이 중국과 부딪치고, 또 러시아와 부딪치는 상황을 생각해 보라. 자연스럽게 한'미'일 남방 3각과 중국'러시아 그리고 북한의 북방 3각이 제2의 냉전구도를 형성할 수 있다. 역사 문제와 영토 문제가 이를 촉발시킬 수도 있다.

▶남북관계 개선이 답

김병준: 그렇게 되면 정말 큰일이다. 우리는 우리가 원치도 않는 대립구도에 함몰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중국과의 관계가 나빠지면서 많은 것을 잃게 된다. 또 일본과는 역사 문제와 영토 문제를 그대로 둔 채 같은 줄에 서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문정인: 핵심은 남북관계 개선이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우리가 꼭 미국과의 동맹에 과도하게 의존할 필요가 없다. 모든 국가와 잘 지내면서 오히려 동북아공동체를 만드는 주역이 될 수도 있다. 즉 안보공동체와 경제공동체를 만들고, 나아가 사회문화적 협력과 유대를 강화하면서 동북아 지역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도 있다.

김병준: 경제공동체는 FTA 등을 통해 지역경제를 하나로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그러나 안보공동체는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다. 독자들을 위해 어떤 것인지 설명해 달라.

문정인: 안보질서와 관련해서 두 개의 패러다임이 경합하고 있다. 하나는 미국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동맹 내지는 집단방위체제이다. 이는 공동의 위협이나 적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체제이다. 지금의 한'미'일 동맹체제를 생각하면 된다. 반면 집단안보체제는 유엔헌장에 있는 것으로 한 국가가 침략행위를 하면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이 같이 응징하는 체제이다. 시진핑이 재작년 5월에 내놓은 '신아시안 안보 구상'이 이와 유사하다. 우리 입장에서는 후자, 즉 안보공동체 쪽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김병준: 그런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그렇게 안보공동체로 갈 수 있겠나? 또 주도하는 것은 더욱 어렵지 않겠나?

문정인: 유럽통합도 독일과 프랑스가 기본합의를 하면서 성립됐지만, 그 중심 역할은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같은 작은 나라들이 했다. 남북문제만 해결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김병준: 남북문제를 푸는 것이야말로 쉬운 일이 아니지 않으냐?

문정인: 그렇게 어렵지 않다. 북한도 대화와 교류협력을 원하고 있다. 다만 양쪽이 서로의 주권과 체제의 이질성을 존중해 주고 상호 비방을 자제하면 길이 열린다. 우리 정부가 그런 입장을 분명히 해 주면 된다.

김병준: 북한이 대화와 교류협력을 원하는 것이 확실하나?

문정인: 김정은 신년사를 보면 안다. 한미합동 군사훈련 중지, 주권과 존엄성 존중, 흡수통일 노력 중지 등을 조건으로 걸기는 했지만, 대화와 교류협력의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남북관계에 3분의 1을 할애했다. 전례 없는 일이다. 게다가 중요한 일이 또 있다.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가 남쪽 체제보다 우월하지만 남쪽에 이를 강요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적화통일 목표를 지운다는 뜻이다. 대단한 변화 아니냐.

김병준: 그 정도면 정말 해볼 만하다. 한미합동 군사훈련 중지와 같이 수용하기 힘든 부분도 있지만 이야기를 시작하지 못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최소한 우리도 흡수통합이나 체제통합을 하겠다는 입장은 아니지 않으냐.

문정인: 지금껏 해야 할 약속은 다 해 왔다. 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공동선언, 10'4 정상선언이 그것이다. 그 약속 다 지키겠다고 다시 한 번 화끈하게 선언하면 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만 해도 그렇다. 크게 세 가지 내용, 즉 인도적 지원, 민생 인프라 구축, 그리고 민족 동질성 회복이다. 새로운 것이 없다. 새로운 것도 없는데 새로운 것처럼 이야기하니 오해만 생긴다.

김병준: 한미합동 군사훈련이 문제인 것 같다. 연평도 포격 이후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결국 상호불신이 더 높아지지 않겠느냐?

문정인: 올해는 좀 줄인다는 말도 있다. 어쨌든 불신과 관련하여 두 가지 이야기를 하자. 하나는 진심을 담아 깊이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비공식 대화 채널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필요하면 비선 라인도 활용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정부는 이걸 잘 안 하거나 못 하고 있다. 공식적인 라인에 의존하고 있는데, 모두가 쳐다보는 자리에서 무슨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나. 한미합동 군사훈련만 해도 안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기간, 규모 등을 줄이는 문제는 막후에서 이야기해 볼 수 있는 것 아니냐.

김병준: 또 하나는 무엇인가?

문정인: 남북관계 개선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3월이면 한미합동 군사훈련이 시작된다. 또 전략무기 배치도 거론되고 있다. 잘못하면 이런 움직임에 북한이 미사일 실험발사나 핵실험으로 대응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남북관계는 회복하기 어려워진다. 중요한 건 국민의 안전과 국익 아니냐. 공개, 투명 대화의 원칙만 고수하다 자칫하면 실기할 수 있다. 일이 터지고 나면 억제력을 아무리 강화해도, 또 원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다. 예방, 즉 터지기 전에 막아야 한다.

▶우리도 힘을 가져야.

김병준: 남북문제가 잘 안 풀릴 때를 대비해서, 또 안보공동체 등이 잘 안 될 때를 대비해서라도 우리도 어느 정도 힘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과 일본도 군비증강을 하고 있다. 그 추세가 염려스럽다.

문정인: 중국이나 일본 수준의 무력을 가질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공격을 당하거나 피해를 입으면 보복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공군력과 해군력이 중요하다.

김병준: 노무현 대통령 시절 동북아시대위원장 하시면서 제주 해군기지 문제로 고생을 많이 한 것으로 기억한다. 제주도 출신이라 더 많은 비판을 받았을 것 같다. 평화의 섬 한다고 해 놓고 군사기지 가져다 놓는다고.

문정인: 그렇다. 고생 좀 했다. 당시 대통령의 말이 기억난다. 2007년 6월 제주도에서 있었던 현지 주민들과의 환담에서 참석자 한 사람이 평화의 섬에 왜 해군기지를 설치하느냐고 물었다. 대통령 대답이 이랬다. "평화를 위해 해군기지가 필요하다." 같은 생각이다.

김병준: 이야기를 나누고 난 다음에도 여전히 마음이 무겁다. 긴장과 불안이 여전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문정인: 어떤 사람은 지금이 1894년 같다고 한다. 청일전쟁 때와 같이 중국과 일본이 부딪칠 수 있다는 말이다. 또 어떤 사람은 1914년 같다고 한다. 제1차 대전 때처럼 미국과 중국이 부딪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1930년대와 같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중국 군부가 그때의 일본 관동군처럼 중국을 군국주의로 몰아갈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동북아의 평화는 무너지게 된다. 그래서 우리의 역할이 중요하다. 통일된 한반도가 그런 상황 전개를 막아야 한다.

김병준: 지금의 박근혜정부가 이에 대한 구상을 잘 세우고 있나?

문: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동북아구상과 박근혜 대통령의 평화협력구상은 궁극적으로 같다.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동북아 평화협력 질서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이 실천적 노력을 얼마나 기울이느냐에 있다.

시간: 2월11일 오전 10시∼12시

장소:서울 광화문 소재(사)대한민국지식중심사무실

이성근 객원기자 bke3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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