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는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공통의 화제를 가지고 즐겁게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집안의 어른들은 이런 상황에서 어떤 화제를 가지고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혼인 사람들이나 취업 준비생, 학생들의 경우에는 "빨리 결혼할 것이지 아직도 그러고 있냐?", "옛날 나 때는 그러지 않았어.", "저 누구네 손주는 명문대 합격하고, 누구네 막내는 대기업 취직했다고 하던데." 이런 어른들의 일방적인 훈계나 비교하는 말들 때문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될 수 있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은 세대에 따라 정치적 성향이 완전히 갈라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른 세대와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차례를 지내고 나면 음복을 하면서 늘 그렇듯 집안 어른들은 주로 정치 이야기를 한다. 한번은 '김대중 노무현이 세상을 빨갱이 천지로 만들었다.', '김대중이 북한에 퍼 준 돈 때문에 우리나라 경제가 아직도 회복이 안 된다.' 이런 말들을 나누며 서로서로 공감을 했다. 원래 어른들이 그러려니 하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나는 참지 못하고 젊은 사람들을 대표해서 "정부가 하는 일에 반대를 할 수 있는 게 민주주의 아닙니까?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에 준 돈은 4대강 사업 때문에 갚아야 하는 돈의 이자도 안 되는 돈인데, 그 정도로 경제가 회복이 안 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라고 말했다가 엄청난 훈계를 들어야 했다. 그 이전에 내가 '우리나라에서 글 쓰는 것과 말하는 것을 다 잘하는 사람이 유시민 씨와 진중권 씨'라고 이야기한 것 가지고도 밥상을 엎을 뻔한 적이 있는데, 괜히 더 이야기를 했다가는 오랜만에 만나서 마음만 상할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가장 기분 좋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상황은 모두가 공감을 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해서 같은 입장을 벗어나지 않고 한마디씩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 경우에도 각자 자기가 우위에 있는 정보를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들은 경청하는 상황이면 얼마든지 유쾌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일반 기업에 다니거나 자영업을 하는 친구들과 모임이 있을 때, 나는 친구들이 속한 조직의 문화나 그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에 대해 경청을 한다. 그리고 친구들은 내가 이야기하는 언론을 통해서는 접할 수 없는 교육 분야 이야기에 경청을 한다. 누구도 자기의 생각을 강요하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고 하지 않는다. 쓸데없이 술자리에서까지 논쟁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똑똑하다고 인정받을지는 모르지만 인간관계에는 매우 미숙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들끼리의 대화 양상을 보면 주로 자신의 주장을 표현하는 말이고, 그것은 곧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다. 즉 정치적 담론은 확고한 자신의 입장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정보의 교환을 통해 원활한 대화가 이루어지기 힘들다.
국문학 박사가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보통 사람들은 스스로 국문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을 알기 때문에 경청을 한다. 그렇지만 정치 문제에 대해서는 정치학 박사가 이야기를 한다 해도 사람들은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치적 신념이 바뀌는 것은 논리적인 설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순간이나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과 같은 깊은 감화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명절에 모여서 어른들이 하는 몇 마디에 젊은 세대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바꿀 리도 없으며, 젊은 사람들이 "어르신께서 잘못 알고 계시는데요."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야기에 어른들이 굳게 지켜온 정치적 입장을 바꿀 리도 없다. 명절에 모두가 즐겁게 이야기를 하려면 설득을 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요즘 젊은이들 생각은 어떻노?", "어르신 생각은 어떠십니까?" 하고 경청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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