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끝났다. 연휴가 유난히 길었던 덕분일까. 고향을 방문한 친지들은 다양한 고향의 소식을 접했다. 이 가운데 경주의 설날 화제는 단연 경주시의 '졸속 행정'이다. 명절 때면 가장 큰 화두였던 지역 정가 소식은 그다음으로 밀렸다.
사연은 이렇다. 경주시가 앞뒤 가리지 않고 각종 행사를 유치한 뒤 수일 만에 보류하거나 아예 없던 일로 해버리는 행정난맥이 명절 음복 거리가 됐다.
경주시는 이달 초, 오는 9월 경주실내체육관에서 54개국 선수와 감독, 경기 진행요원 등 1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 세계경찰태권도대회'를 연다고 발표했다가 이틀 만에 보류했다. 국제대회 유치 욕심에 무조건 실적 위주의 보여주기 행정을 펼쳤다가 경찰청의 반발로 무산된 것이다.
시민들은 '세계경찰태권도'라는 행사명이 붙어 '세계소방관대회'처럼 전 세계 태권도를 하는 경찰들이 모여서 겨루기를 하는 것으로 인식했을 터이다.
그러나 경찰과 태권도가 관련이 있는 것은 기존 태권도의 품새와 겨루기 외에 경찰에 필요한 호신술과 체포술을 접목했기 때문에 '경찰태권도'란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세계경찰태권도연맹은 경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경주시가 앞서간 것이다. 참 민망하기 그지없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 꼴이다.
또 이달 13, 14일 이틀간 경주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할 예정이었던 '아트 가펑클' 공연이 수일 앞두고 돌연 취소됐다. 1960, 70년대 전설적인 포크록 듀오인 사이먼 앤 가펑클은 아름다운 하모니와 유려한 멜로디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팀이다. 듀오 중 아트 가펑클의 첫 단독 내한공연이 경주에서 13, 14일 이틀간 예정돼 있었지만 결국 무산됐다.
가펑클의 한국기획사 측은 '연로한 나이로 경주 공연을 하기 힘들다. 컨디션도 좋지 않다'는 공문을 공연을 불과 열흘 앞둔 이달 2일 예술의전당 측에 보낸 것이다. 당초 이 공연은 기획사 측이 가펑클의 나이가 많아 부산 공연에 이어 곧바로 이어지는 경주 공연은 힘이 든다고 경주시 측에 이야기했지만 공연을 해달라고 떼를 썼다가 이런 낭패를 당한 것이다. 이 공연은 950석 중 600여 석이 유료 판매됐다. 주최 측은 수수료를 포함해 전액 환불조치했다.
예술의전당 한 간부직원은 "나이가 많아 취소한다는데 방법이 있느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참 궁색한 답변이다. 경주예술의전당은 지난 2010년 11월에 경주시가 출자한 문화재단이다. 말 그대로 경주시가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비영리 단체이다. 일개 공연단체도 아니고 지자체에서 이 같은 실수를 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는지, 경주시의 '헛손질 행정'으로 신뢰도와 공신력이 여지없이 무너졌다.
경주 이채수 기자 cs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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